지난해 11월 4일 일본 언론은 1990년대 'J-POP 미다스의 손'이라 불렸던 코무로 테츠야가 체포된 소식을 앞 다퉈 보도했다.
천재 뮤지션 코무로 테츠야는 일본에서 음반시장이 절정을 이룬 1990년대 중후반 제작하는 음반마다 판매량 1위를 독점하며 승승장구했다.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그는 1996, 1997년엔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들을 제치고 일본 고액납세자 순위 4위(사실상 소득 순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음악 재벌'로 불렸다.
이 같이 화려한 시절을 보낸 코무로 테츠야가 사기 혐의로 경찰에게 연행되는 사진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그는 체포 당시 빚에 허덕이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여년간 그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천재 뮤지션'으로 각광받은 톱스타
뮤지션 코무로 테츠야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가수이자 음악프로듀서, 작곡가, 작사가, 편곡가, 신시사이저 연주자,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머, 믹싱 엔지니어 등으로 불린다.
악기 연주와 작곡 실력까지 두루 겸비한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TM NETWORK'라는 밴드를 결성해 가수로 활동했다. 또 와타나베 미사토, 나카야마 미호, 마츠다 세이코, 고이즈미 교코, 나카모리 아키나 등 당대 최고 여가수들의 히트곡을 작곡하고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OST를 만들어 이름을 떨쳤다.
1995년엔 혼성 3인조 그룹 'globe'를 결성하면서 음악적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globe는 데뷔 싱글 'Feel Like dance' 등 한 번만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화려한 멜로디와 비트가 특색인 곡을 선보여 인기를 얻었다. 1996년 발매된 첫 앨범 'globe'는 400만장이 팔릴 정도였다.
그는 또 당시 J-POP계를 주름잡던 아무로 나미에, 카하라 토모미, 스즈키 아미, trf, hitomi 등 톱가수와 그룹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이들 가수는 코무로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특히 코무로 테츠야는 각 가수의 매력과 개성을 정확히 짚어내며 프로듀서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강렬한 이미지의 아무로 나미에는 'Chase the Chance' 같은 빠른 리듬의 유로댄스나 'Don't wanna cry' 'SWEET 19 BLUES' 등 R&B 스타일의 노래를 주로 부르게 했다. 차분한 목소리와 고음이 특색인 카하라 토모미에겐 'LOVE BRACE' 같은 애절한 발라드나 'I'm proud' 등 경쾌한 느낌의 댄스곡을 만들어주는 식이었다.
●'음악재벌'로 불리던 전성기
전성기라 불리는 1996년 한 해 동안 코무로 테츠야가 제작한 음반은 총 1500만장이 판매됐다. 같은 해 가수별 음반 판매량 상위 5위권에는 그가 프로듀싱한 스타가 셋(아무로 나미에, globe, 카하라 토모미)이나 포함됐다.
이 때문에 당시 일본에선 '코무로 현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코무로 테츠야가 프로듀싱을 맡은 가수들을 의미하는 '코무로 패밀리'는 히트 보증수표로 여겨졌으며 스타를 꿈꾸는 많은 신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재능과 함께 재산도 꾸준히 불어났다. globe의 음반 수익은 물론 여러 톱가수의 프로듀서로서 활동하며 벌어들인 돈도 엄청났다. '코무로 패밀리'의 곡은 그가 작곡, 작사, 편곡 등 모든 작업을 도맡았기 때문에 인세도 만만치 않았다.
1997년 그의 납세액은 11억7000만엔(약 150억원)으로 추정소득은 30억엔(약 380억원)에 이르렀다. 199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전국 고액납세자 순위 4위에 올랐다. '음악재벌'이란 말이 나온 것도 이때다.
갑부가 된 코무로 테츠야는 세계적인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과 함께 홍콩에 100만달러를 투자해 회사를 설립하며 뮤지션으로서 해외 진출을 준비했다. J-POP을 벗어나 미국 팝계에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각지에 스튜디오를 마련했으며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개인 씀씀이 역시 규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무로 테츠야의 집에는 고가의 첨단기기와 명품, 수입 자동차가 쌓여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빚쟁이 사기꾼의 오명
해외 진출의 야심 때문인지 그의 음악 스타일은 1990년대 말부터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단조롭고 난해한 노래가 잇따라 발표된 가운데 1999년을 계기로 음반 판매량은 급속히 줄었다.
여기에 아무로 나미에가 갑작스런 임신과 출산 등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카하라 토모미가 소속사를 이전하는 등 악재가 잇따른 가운데 '코무로 패밀리'는 사실상 와해됐다. 또 그가 새로 발굴한 신인들이 기대만큼 인기를 얻지 못해 프로듀서로서 벌어들이던 수입원은 점점 줄었다.
특히 코무로 테츠야의 연인이었던 카하라 토모미가 그에게 결별을 통고받고 자살소동을 벌이는 등 사생활 문제로 이미지가 실추됐다. 그는 바람둥이로 소문이 좋지 않았고 이미 한 번 이혼한 경력이 있었는데 카하라 토모미와 헤어진 뒤 다른 연예인과 재혼했다. 그러나 곧 이혼했고 globe의 멤버 케이코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리면서 '비호감' 이미지가 굳어졌다.
대중의 외면 속에 globe의 활동도 사실상 중단됐다. 무리한 해외투자와 사업실패, 사치스런 생활로 음악재벌은 재산을 탕진하고 빚만 불렸다. 이혼한 전처들에게 지급하는 막대한 위자료 역시 부담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2006년 자신이 작곡, 작사한 노래 806곡의 저작권을 넘기겠다고 속여 5억엔(약 64억원)을 챙긴 사기 혐의로 지난해 11월 쇠고랑을 찼다. 올해 5월 일본 법원은 코무로 테츠야 피고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탁월한 음악적 재능으로 정상에 올랐다가 바닥까지 떨어진 코무로 테츠야. 그는 지난 8월 자신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음반사 에이벡스의 여름 콘서트 무대에 올라 팬들에게 사과하며 재기를 다짐했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경험한 천재 뮤지션이 실패를 딛고 음악으로 일어설 수 있을지 팬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