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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s 하루키 이야기14

강치 강치 강치는 고독했다. 친구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몇 명의 친구가 있었고, 함께 마작도 했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여, 따져 보면 승패가 거의 비슷했다. 이따금 술을 마시는 데 불려가기도 한다. 여자 친구도 있었다. 두 시간 동안 다섯 번이나 섹스를 할 수도 있었다. 한 시간당 2.5회이므로, 강치의 평균 횟수에 비하면 어지간한 편이다. 하긴 강치에게는 전희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그다지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또 배가 고파서도 아니다. 전갱이 따위는 닥치는 대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치는 고독했다. 바다에 떠올라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강치는 자신이 강치인 데에 대한 무한한 허무감을 느끼는 것이다. `왜 나는 강치인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녀석이.. 2009. 1. 5.
세라복을 입은 연필 세라복을 입은 연필 얼마 전에 좀 볼일이 있어서 어떤 잡지사의 편집자와 만났다. 일이 다 끝난 후 둘이서 술을 마시며 세상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 자연스레 화제가 학용품 얘기로 옮아 갔다. 학용품 얘기는 나도 퍽 좋아하는지라, 볼펜은 어느 게 좋다는 둥, 지우개는 어느 게 최고라는 둥 하는 두서없는 얘기를 술집에 앉아 계속하고 있는데, 그러던 중 상대방이 '그런데 무라카미 씨는 늘 어느 정도 딱딱한 연필을 사용하십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늘 F심 연필을 사용하니까 '예, F인데요'라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그렇습니까. 그런데 F심 연필은, 전 늘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란다. 술자리에서의 일이었으므로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느끼는 방.. 2009. 1. 5.
'한밤중의 기차에 대하여' '한밤중의 기차에 대하여' 여자아이가 남자아이한테 묻는다. "너는 나를 얼마나 좋아해?" 소년은 한참 생각하고 나서, 조용한 목소리로 "한밤의 기적 소리만큼" 이라고 대답한다. 소녀는 잠자코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린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무엇인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어느날, 밤중에 문득 잠이 깨지." 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어. 아마 두시나 세시, 그쯤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몇 시인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그것은 한밤중이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이고,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알겠니. 상상해봐. 주위는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소리라고는 아무것도 안 들려. 시계바늘이 시간을 새기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아. ---- 시계가 멈춰버렸는지도 모.. 2009. 1. 5.
하루키-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하루키-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솔직히 말해 그다지 예쁜 여자아이는 아니다. 눈에 띄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 뒤쪽에는 나쁜 잠버릇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고, 나이도 적지 않다. 벌써 서른살에 가까울테니 까. 엄밀히 말하면 여자아이라고 할 수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그녀를 알아볼 정도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땅울림처럼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 버린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좋아하는 여자아이 타입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발목이 가느다란 여자아이가 좋다든지, 역시 눈이 큰 여자아이라 든지, 손가락이 절대적으로.. 2009.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