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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s 영화 이야기

로스트 결말 - 그 해답을 찾아서

by forzalazio 2010. 5. 28.

로스트 피날레 - 결말에 대한 갖가지 리뷰 모음

 



드라마가 끝나고 나니 정말 말이 많군요.

여러 사람의 생각의 표현을 읽는 일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표현은 이치에 닿지 않기도 하지만, 그중에는 풍부한 상상력의 결실도 있어 보여 흥미롭습니다.

영어를 최대한 원문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옮겼습니다.

(항상 빈줄로 끊은 부분에서 화자가 달라집니다.)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이 시작된 바로 그곳인 대나무 밭에서 잭이 죽는 장면은 가장 훌륭한 장면 중 하나였다.


좋았으나, (잭의 아들과 같이) 사이드웨이즈 세상의 요소들은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호킹 여사가 "보낼 수 없다"고 한 것은 모두 떠나는 걸 원하지 않은 것인가? 이들 중 몇 명이 "진짜"인가?


데스몬드가 엘로이즈에게 말한 것은 패러데이가 자기와 함께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따라서, 패러데이는 자신의 그룹이 따로 있는 것이다.


월트와 마이클, 또는 벤이 그 자리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그 중심 그룹에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그룹의 사람들은 그 순간까지 이르도록 서로 도와 왔기 때문에 함께 나아갈 것이었다.
벤은 또다른 그룹을 갖고 있을 것이다. 월트와 마이클은 추락 비행기에 있었지만, "이 그룹"에 속하지는 않았다.


패러데이, 샬롯, 마일즈는 자기 그룹이 따로 있을 것이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두 가지 이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무지개 다리" : 애완동물이 건너기 전에 주인을 기다리는 장소
2. 사우스파크 "항공기 연옥" :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아갈 준비가 되기 전에는 출발할 수 없는 상태

 


마이클이 거기 없었던 이유는 섬에 붙들려 있어 아직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월트가 거기 없었던 이유는 그 섬이 자기 생애의 제일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웹사이트에 코멘트한 사람이 "결말은 전도사의 환심을 산 선물일 뿐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결말에 실망한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더 나은 설명과 해피엔딩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스테인드글래스 창문과 다른 장치를 사용해서 하나의 "우세한" 종교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고, 모든 캐릭터의 의미와 "불필요한 죽음"으로 보이는 우연한 일들을 최고로 완성하는 내세에 대한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문자적, 고유 의미의 "연옥"이 아니다. 카톨릭 연옥은 "천국"에 갈 자격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에 아직 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장소이다. 따라서 그들의 영혼이 "나아가"도록, 사람들은 여전히 카톨릭 교회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연옥이 아니며, 드라마에서도 그 장소를 단순히 "만남의 장소"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플래쉬사이드웨이즈에 대한 최선의 묘사는 연옥으로 보인다는 점으로 회귀한다.
별난 이론 하나: 시간 왜곡 = 빛 에너지 상실. (왜냐하면 그곳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 따라서 현재 시간을 혼란스럽게 함.) "병"과 "코크"는 영혼을 봉쇄한다. 죽음보다 더 나쁜 것. 결코 죽을 수 없기 때문.


로스트 시청자는 두 가지 부류이다. 지금까지 캐릭터와 그들의 감정의 폭에 만족했던 이들이 있고, 기본적으로 줄거리 구성을 즐기며 해답―정말로 공고한 해답―과 내부적 일관성을 찾는 이들이 있다. 불행하게도 나는 후자에 속하며, 첫 번째 타입의 팬들은 꽤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나도 정말 만족하기를 바랬으나, 궁극적으로 작가들이 내 타입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왜 연옥이 그런 방식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잭은 줄리엣과 결혼/이혼하였고 아들도 두었다. 하지만 존 록은 잭이 아들이 없다고 말한다. 왜? 그리고 아론은 아기이다. 누군가 설명해 달라. 그리고 동의하건대, 빈센트도 연옥에 있었어야 한다.


제작진이 모든 미스테리에 대해 답해 줄 수 없다는 걸 안다. 아무도 그렇게 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결말도 안 되는 것에 되는 대로 갈지자 행보를 하는 대신에, 적어도 일말의 종결을 부가할 시도를 하기를 바랬다.
물론, 로스트는 감정적이고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대부분 즐겼던) 이 드라마를 6년이나 끌고 왔는데, 결국 여기에 이른 것인가?


맞다. 연옥이 아니라, 실제로는 림보에 더 가깝다.


가서 마지막 30분을 다시 보라. 매우 도움이 되었다.
끝부분에 빈센트가 숲에서 나올 때 강아지로 잠깐 보여준다.(애초 추락과의 연관을 형성하기 위해) 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잭의 옆에 누울 때는 이미 다 컸다. 이 장면은 잭이 비행기 추락시에 죽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했다.
여기 몇 가지 메모가 있다.
-플래쉬사이드웨이즈는 연옥이 아니다. 일종의 준비 단계로서 그들 모두 "나아갈" 준비가 될 때 서로를 찾아 거기 있게 하는 장소이다.
-제작진이 보여준 것은 그들 모두가 어떻게 잭의 죽음을 위해 함께 모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함께 죽거나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플래쉬사이드웨이즈는 직선의 시간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헐리의 움직임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들 모두 다른 방법으로 모였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이들을 기다리면서 플래쉬사이드웨이즈에서 "살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세부점들에 매달리지 말라. 그건 단지 모두를 결국 한자리에 모으려는 제작진의 구성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아론의 탄생이나, 그들 모두가 유사한 시간대의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 등에 땀빼지 말라. 그들은 모두 종국에 다른 시간대를 인식했겠지만, 크리스천이 말한 바와 같이, ""여기"에, "지금"이란 것은 없다."
-플래쉬사이드웨이즈 세상은 단지 사람들이 죽음 후에 사물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놓아주기"가 쉽든지 어렵든지 간에 말이다. 같은 시간대에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 보니까 더 혼란스러운 것이다. 완전히 다른 시간대에 죽은 헐리와 리비가 만나는 걸 생각해 보라.
-제작진은 단지 모든 것을 드라마를 위해 한데 병합해 버렸다. 헐리가 "받아들이기"를 한 것은 잭보다 훨씬 후일 것이지만, 제작진은 드라마에서 캐릭터 관계를 종결하기 위해 그들을 함께 보여주었다. 요점은, 잭의 관점에서, 그가 사랑한 모든 이들이 그가 마침내 "놓아줄" 시점에 거기 있었던 것이다.
-잭은 반드시 천국에 간 것이 아니다. 다만 "놓아주고" "나아간" 것이다. 당신이 좋을 대로 그 의미를 생각하면 된다. 이것이 훨씬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한다. 드라마 내용은 연옥과 천국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나아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야곱의 사다리"가 아니라, "식스 센스"를 생각하라.
전체 그림을 더 편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아버지가 한 말을 전부 잘 들어라. "이 일은 전부 일어났다...이 모든 사람들은 실제다."


나는 드라마가 아름답게 끝났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완전한 그림이 된 방법을 진정 사랑한다.
당신이 여전히 해답을 찾고 있다면,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잭이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미소지은 장면이 좋았다. 그는 자기기 늘 하겠다고 말했던 일을 마쳤다: 그들이 섬을 빠져나가게 하는 일. 또한, 자기가 하도록 되어 있는 일을 했다: 섬을 구하는 일. 그리고 이 두 가지 일이 일어났을 때, 자기가 살았던 삶과 화해했다. 그 후에 그는 사이드웨이즈 세상에서 깨어나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갈 수 있었으며, "놓아보내고" "나아갈" 수 있었다.

야곱과 검은 옷의 사나이(MIB=검은 연기)와 위드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은 일종의 보호자들인가? 이전에 검은 옷의 사나이가 야곱에게 "많은 사람들을 섬으로 데려왔지만 모두 똑같이 끝났다"고 했기 때문에 궁금하다.


최종회가 그렇게 신속히 진행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30분만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90분이 되었을 때 이미 록/검은 연기는 죽었다. 이제 무슨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
최종회 초기에 벤이 소여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쏘려고 하더니만 (바로 그 같은 사람이 이전에 소여를 철창에 가두었었지.) 두어 장면 후에는 나무에 낀 벤을 소여가 구해주려 하고 있었다. 벤이 종국에는 좋게  끝나리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는 "나아가기" 전에 "놓아보낼" 뭔가를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거기 있어 설명해 준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대화를 통해 잭은 종결을 얻었으며 동시에 아버지가 호주로 가서 죽기 전에는 나누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훌륭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기독교 믿음에 있어, 많은 이들은 죽음에 이를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사하고 그들을 인도할 것이라고 느끼는데, 바로 크리스천이 아들 잭을 위해 한 바와 같다. 매우 상징적이다. 크리스천 셰퍼드 관의 창문 위에 기독교, 유대교, 불교, 이슬람 등 온갖 종교의 상징물들이 있던 점과도 일치한다. 좋은 묘사였다.
한 가지 흥미롭게 주목한 점이 있는데, 기억을 인식하기 위해 사람 또는 사물을 여러 번 만지는 것이 필요했던 유일한 캐릭터가 잭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믿음의 사람"으로 변모되기 전에 "과학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더 오래걸렸던 것이다. 잭은 처음에 록의 발과 몸을 만져 얼핏 보게 된다. 다음에 케이트가 그의 얼굴을 만져 좀더 알게 되지만, 줄리엣&소여처럼 케이트를 만지려고 하기 보다는 이 강력한 기억 또는 연관성에서 달아나버렸다. 마침내 아버지의 관을 만지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종결을 갖게 된다. 다른 주요 캐릭터들은 이런 과정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가 단지 모두의 종결 또는 인식을 한데 오게 함으로써 모두가 "나아가고 놓아보낼" 수 있었다는 걸 설명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라 확신한다.


에반게리온의 결말을 떠올리게 했다. 주인공은 가슴 깊은 인식을 갖게 되며, 중요한 심리적 돌파구를 갖게 되는데, 종국에 모두가 일어나 그에게 박수를 친다. 그게 모두를 화나게 만들었다.
로스트의 결말은 화나게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결말은 아무것도 "끝내고" 싶지 않은 결말로 보인다. 결말이 달랐다면 잘 모르겠지만...그렇게 된 상황에서, 자신들이 전달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많은 것을 제작진이 약속하지는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스트 광팬(Lostie)이 되기 전에는 난 결코 스타트렉 광팬(Trekkie)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위대한 여정을 마친 내 동료 Lostie(Lost 캐릭터)들에게 감사한다.


결말을 그리 좋아할 수 없어 슬프다. 플래쉬사이드웨이즈에서 아무것도 실제 이루어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달랐을 뿐이다. 찰리는 섬에서 더 많은 일을 이루었다. 아니면 클레어를 보는 것으로 그가 원하던 종결을 얻은 것인가? 섬을 보호하고 구하는 일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은 것이 정말 중요하기나 한 건가? 캐릭터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장면들은 매우 좋았지만, 크리스천과는 대화는 저급했다. 더 많이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더 깊은 인식을 갖게 될 것같다.


난 이런 점들이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다.
1. 그들 모두는 815편 추락시 죽었는가?
2. 섬이 연옥이라면, 숫자 입력, 북극곰, 다르마 기지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3. 그들이 섬을 떠나서 잭과 케이트가 같이 살 즈음에 케이트가 '소여를 위해 하겠다고 약속한 일이 있다'고 잭에게 전화로 설명했다.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가?
4. 드라마 전체에서 그들 모두는 죽어 있었는가?


이 드라마가 그리울 것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고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우리의 유산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에게 상기시켜 준다.


버튼을 누르는 것 등의 가외 요소들은 전부 비유적으로 말해서,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 여정에서 빗나가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총체적 개요에서 본다면 그것들은 전혀 중요하거나 관련이 없으며 단지 길에서 벗어나게 할 뿐이다. 드라마를 본 후 내 인생과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해 진정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사실이 좋다. 드라마 전체의 메시지는 사랑과 교훈을 배우는 것과 실수를 딛고 나아가는 것의 중요성에 관한 것으로 본다.


야곱과 검은 옷의 사나이(MIB)의 타당성에 관해서는...로스트 캐릭터들이 순환고리를 끊은 것으로 본다.
야곱이 데려온 이 그룹은 이전과 달랐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섬을 구했으며, 헐리의 방식은 야곱의 방식과는 매우 달랐을 것이라고 추정해야 한다.


소설을 읽을 때에도 두 번째 읽을 때에는 모든 행동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지미 키멜이 시즌6 에피1의 장면을 재생할 때 로즈가 잭에게 하는 말, "당신은 이제 놓아보낼 수 있어요." 이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또한 잭이 사이드웨이즈 세상에서 목을 계속 보는 장면이 결국 검은 연기/록과의 최후 전투에 연유한 것임을 생각할 때 기발하다. MIB의 모리어티 교수같은 죽음에서 셜록 홈즈에게 고개를 끄떡여줬다. 끝나서 슬프고, 매우 잘 해내줘서 행복하다.


어떻게 여기 사람들은 아무도 나처럼 최종회에 격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드라마는 섬에 관한 어떤 주요 질문에도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드라마가 보여준 것이라곤 싸구려 조명 효과의 사용과 그들 모두를 연결하는 새로운 대체 시간대뿐이었다.


케이트, 소여, 마일즈, 클레어, 리처드, 라피더스를 태운 비행기는 폭발했으며, 최종 장면의 잔해는 그것이다. 위드모어는 이미 폭발물을 장치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누군가 그들에게 경고해 주길 기다렸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다. 잭은 그들이 안전하게 떠났다고 믿었기 때문에 비행기를 보고 행복했다고 난 생각한다. 부가적으로, 케이트는 크리스천 셰퍼드(Shephard)의 이름에 대해 질문했다. "정말로?" 크리스천은 그들 모두를 내세로 이끄는(shepherd) 중이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내 말을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


Mr. 에코는 어디 있었는가?


연옥과는 다르다. 그들은 "나아갈" 수 있기 위하여 과거의 생애으로부터 헤쳐나갈 필요가 있었던 일을 헤쳐나가기 위해 함께 "이 생애"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소여&줄리엣과 찰리&클레어의 재결합이 너무 너무 너무 좋았다. 울었다.
드라마의 시작처럼 잭이 대나무 숲에서 죽은 결말이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빈센트가 옆에 있다. 아마도 빈센트는 무지개 다리에서 돌아와 다음 생에까지 잭과 동반하지 않을까?
해변의 잔해를 보여준 끝 장면이 좋았다. 결말의 종국을 보여주었다. 그들 모두는 "나아갔다."
크리스천 셰퍼드는 추락한 비행기에서 유일하게 원래 죽은 사람이었는데, 결국 모두에게 빛을 보여주는 이가 된 것이 좋았다.


감정적 수준에서는 최종회를 완전히 만족하다고 느꼈다. 6년 동안의 모든 말들을 분석하는 것은 어렵다. 결말에 생존한 이들(소여, 케이트, 클레어, 마일즈, 리처드, 프랭크, 헐리, 벤) 은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았을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또한 플래쉬사이드웨이즈는 면세구역과 같은 곳으로, 자신의 "업무"를 정리하고 다른 이들을 만나는 장소이다.


최종회는 마치 노래와 같아서 시청자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주는 것 같다. 드라마는 즐거움을 줬고, 불가해하게 했고, 감정을 뒤흔들었다. TV 드라마로서 꽤 괜찮았다. 이보다 더 깊이 생각하는 건 정말로 필요치 않다.


일반적인 부정적 반응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정말로, 이건 서사 대작이었으며 놀라웠다.
이 드라마는 정로에서 벗어나는 것,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린 물질 세상에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속박되어 있는 나머지,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한 시각을 잃고 있다.
언제나 이 드라마의 신화적 요소를 즐겼지만, 종국에는 일부 세부사항이 진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다. 이 드라마는 "놓아보내고" "나아가고"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지, 버튼을 누르고 잘못을 찾고 무의미한 세부점에 화를 내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놓아보낼" 수 있을 때, 더 이상 길을 잃지(Lost) 않으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연옥"에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생에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오늘 많은 이들이 최종회를 깔아뭉개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한다. 그들은 분명히 요점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유감이다. 존 록이 잭에게 말한 바와 같이, "당신이 내게 해 준 것을 언젠가 누군가가 당신에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는 다시 걷는 일에 관해 말한 것이 아니다. "깨어남"에 관해, 그리고 "놓아보내고" "나아가는" 것에 관해 말한 것이다.
신화적 요소를 좋아했던 것만큼, 이제 그 모든 것이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월트를 "놓아보내야" 한다. 이건 긴 시리즈이며 단지 다 담지 못했을 뿐이다. 제작진은 파일럿에서 잭을 죽일 것을 고려했었다. 벤은 단지 세 에피에만 나올 예정이었다. 에코는 더 큰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제작진은 5년 동안 수많은 연기자와 외부 요인들을 조절해야 했다. 월트 스토리를 뺐다고 해서 괘념치 않는다. 섬에서 태어난 아기들에 관해서도 괘념치 않는다. 이 드라마는 몹시 분주히 쓰여졌으며 그들은 다시 돌아가 새로 쓸 수 없었다.
벤이 "그건 야곱의 방식이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아마도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바로 이 말이 우리가 대답할 수 없는 사소한 요소들에 대한 해결책이 될 거라 생각한다.
"속삭이는 자들"에 대해서도 더 대답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평행' 세상에 있는 이들이다. 여전히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 용무를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배운 교훈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계속 싸운다면, 훌륭한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을 위해 싸우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이다. 존 록은 항상 섬에서 자신이 목적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종국에는 잭 역시 자기도 목적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그건 빛이 계속 지키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서 '뭔가'를 계속 믿는다면, 종국에는 우리가 늘 꿈꾸던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결말의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은 마지막 15분 정도가 잭 중심의 초점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점은 플래쉬사이드웨이즈 "연옥/림보/내세"가 오로지 잭을 위해 존재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시즌 전체에 걸쳐 진행된 스토리의 방식과는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 장소는 "모든" 캐릭터들이 그들의 생애에서 끝내지 못한 일들을 (잭만이 아니고) 마무리짓는  곳으로 보인다. 플래쉬사이드웨이즈 세상은, 잭과 추락 생존자들을 위한 것만큼이나 대니얼과 엘로이즈 같은 이들을 위해서도 만들어진 장소로 보인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모임은 잭을 "위한" 것이었는가? "잭"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 모두가 모여 빛으로 동행하는 것인가? 크리스천이 마련한 방법을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임은 모인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 모두가 "나아가기" 위해 준비가 되었고 함께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을 발견하였다. 오세아닉 815편 승객들이 서로 가장 중요한 유대를 갖고 있다고 추리하는 것은 유효한 논증이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유리되고 홀로 되어 탑승했었다. 계속 삶을 이어간 이들(케이트, 소여, 클레어)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관계를 가질 것이다. 케이트와 클레어는 아론을 함께 키울 것이다. 소여는 줄리엣을 결코 잊지 못한다. (케이트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고 잭에게 말한 내용을 보면 아지라 비행은 성공했으며 케이트는 여러 해 동안 잭을 그리워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방의 각자는 모두 "나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방의 사람들은 잭을 위해 존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케이트나 사이드를 "위해서"도 존재한 것이다. 비록 아마도 유일하게 잭만이, 늘상 그들 모두를 보호하고 인도하려는 열망을 갖고 있었기에, 그들 "모두"를 필요로 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한 가지 잘 맞지 않는 것은 잭의 아들이다. 그는 단지 잭이 아버지와의 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플래쉬사이드웨이즈에서 만들어진 환영인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는가? 그건 좀 이상하게 보인다. 플래쉬사이드웨이즈의 다른 모든 이들은 자기 문제를, 생애 중 실제 엮기었던 인물들과 풀어나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상의 아들은 들어맞지 않는 걸로 보인다. 크리스천이 잭이 겪은 모든 일은 실제라고 말했을 때, 이는 플래쉬사이드웨이즈를 포함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사람들은, "우리" 세상에서의 존재가 없이도, "연옥/림보/내세" 안에서 태어나서 전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뜻인가? 플래쉬사이드웨이즈의 사람들이 모두 "실재" 사람들―생애 중 알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나는 이 결말이 더 좋다.


당신은 세부점에 사로잡혀 있다. "놓아보낼" 필요가 있다.
그게 요점의 전부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교훈이다.
내 인생의 6년 동안 일종의 교훈이 필요했는데, 전달되었다. 공허한 것이 아니다. 인생에 관한 것이다.


빛은 당신이 원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총체적 요점은 "놓아보내고"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본다. 총체적 요금을 '유추'로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천국, 열반, 환생이 될 수도 있다. 그건 "저 너머의" 것이다.
여기에 종교는 없다. 다만, 모두 믿음에 관한 것이다―믿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이 드라마에는 주요한 2개의 스토리라인이 있다. 캐릭터가 그리는 선들과 섬의 미스테리들이다. 캐릭터 스토리라인은 분명히 이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이며, 제작진은 종결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섬 스토리와 미스테리는 분리된 스토리라인이며, 제작진은 아무 종결도 짓지 않았다.
캐릭터 스토리 종결이 좋긴 했지만, 애초에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것은 캐릭터 드라마여서가 아니었다. 사이언스 픽션 미스테리 드라마였기 때문에 본 것이다. 퍼즐을 풀기 위해 3년을 소비했다. 작가들은 괴물을 만들어놓고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해서 미스테리 해결책을 회피해 버리고, 최종 시즌에서 캐릭터에게로 초점을 옮겨 갔다.
당신이 종결에 대해 어떻게 느끼든지 간에, 제작진은 무수한 세부점에 매달리도록 우리를 내버려두었다. 어느 시점에선가 드라마의 진로를 바꿔버렸다. 그들이 근본적 변위에 대해 팬들에게 좀더 정직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대체 우주"에 관해 왜 그토록 헷갈리는지 정말 모르겠다. 대체 우주란 없다! 플래쉬사이드웨이즈는 속임수이며, 핵폭탄은 실제 사건이었으며, 플래쉬사이드웨이즈는 시청자의 예상을 뒤엎기 위해 거기 배치한 것이다. 그것은 내세이며, 크리스천이 드라마 내에서 거의 말 그대로 그걸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가 죽은 것에 대해 열중한다. 어떤 종류의 내세이든 공간과 시간 밖에 존재한다. 설명하려고 괜히 애쓰지 말라. 그건 정확한 과학적 사건이 아니다.


사이드웨이즈는 대체 차원이라고 본다. 동시에 존재하는 다중 현실이라는 파인만의 개념의 의미에서 말이다. 
사이드웨이즈 세상에서 추락 생존자들의 중심 그룹은 재연합―자신의 카르마적 임무 등-의 목적으로 제2의 현실을 이용하였지만, 그 차원에 살고 있는 그외 사람들의 경우, 그것이 인생인 것이다. 예를 들어, 벤은 남기로 선택한다. 좀더 얼마 동안, 품위있는 사람이 되고자 원했다고 본다. 그리고 아마도 다니엘라 루소와 잘 되보려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잭과 줄리엣이 자발적으로 10대 아들을 부모 없는 자식으로 만들면서 떠나는 것이 좀 이상했다. 분명히 그의 생은 계속될텐데 말이다. 크리스천이 말했다시피, 결국 모든 건 실제였다.


물론 모든 해답을 산뜻한 꾸러미에 담아 받는 것도 좋았겠지만, 그게 바로 요점이라 생각한다. 잭은 "과학의 사람"이었다. "과학의 사람"은 모든 해답을 원한다. 이 드라마 전체는 이유를 알 필요가 없음; 단지 믿으면 됨의 여정이었다.
나는 머릿속에 있는 섬의 많은 요소들을 조화시켰다. 예를 들면: 야곱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믿는 "여인"(양모)과 동생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들을 섬으로 데려왔다고 우리는 들었다. 오세아닉 815편이 다다르기 전에 "어더스"와 다르마 요원들과 섬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야곱은 비참하게 실패했다. 섬에 간수되어 있는 이 "선"을 보호하는 일에 인간이 개입할 경우에, 그들은 참으로 권력에 굶주리고 속임수를 쓰고 탐욕스럽게 되었다. 섬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섬의 파워를 조종할 방법을 찾으려는 갈망이 있어 왔다. 오세아닉 815편 승객들이 와서 자기희생 및 자신보다 더 큰 대의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섬은 의도된 "선"이 될 수 있었다. 벤이 헐리에게 다를 수 있음을―야곱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음을―말하는 것이 좋았다.
이 드라마는 오세아닉 815편 승객의 성장 스토리이자, 해피엔딩에 대한 희망의 스토리였다. 나는 로스트 피날레가, 우리가 해피엔딩을 원하며 사랑하게 된 이들의 "부숴진" 인생에 종결을 제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평화와 사랑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놀랍고 굉장한 드라마였다!


데스몬드가 어떻게 사이드웨이즈 세상에서 자기가 할 일을 다 알고 있었는지 설명해 달라. 단순히 자기 짝(페니)과 재결합하여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은 첫 사람인가? 마치 모든 사람을 재결합시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자기 직무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오랜 시간의 팬들이 실제로 질문에 대한 모든 해답을 피날레에서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나에겐 놀랍다. 로스트는 늘상 질문을 유발하고 우리 자신의 이론으로 대답하기에 딱 충분한 정보만 주어온 드라마이다. 그점이 바로 근사한 쌍방향 경험을 하게 한 것이며, 지금 여기서 하는 것처럼 수천 시간 동안 이론화하고 블로그 포스팅하도록 만들었다. 전형적인 절차 진행 드라마는 이런 종류의 팬 개입을 누리지 못한다. 동시에, 제작진이 실제로 평이한 해답을 제시할 때에는 오랜 시간 실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전체 드라마 내내 섬에서 그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놀랍다. 크리스천이 그렇게 홀로 나와서 그렇지 않다고 잭에게 말했음에도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 장면을 다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얼간이로 보이겠지만, 내 인생을 성찰하기 위해 이 드라마가 필요치 않았다. 인생과 존재에 관한 큰 질문에 대답하려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댓글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편이었으며, 그렇게 함으로 만족했음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필요했던 것은 뭔가 즐겁고 생각할 만한 소소한 것이었고, 이 드라마는 그걸 방대하게 제공했다. 연속성이 창문 너머 사라지기 전까지 말이다. (개인적으로, 섬이 움직이고 시간 여행이 시작될 때라고 못박는다.) 스토리가 더 이상 응집력이 없으므로, 중요했던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건 마치 한 묶음의 조각들이 없는 채로 퍼즐을 맞추려고 하면서, 조각 맞추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그러나 모든 조각이 다 있는 것은 아니라면, 무슨 재미가 있는가?
처음 시즌들은 고사하고, 최근에만도 매우 크게 중요한 것들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형상의 그림자" 사람들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야곱이 방문했을 때 일라나는 왜 몸 전체에 감고 있었는가?
이 드라마는 "놓아보내고" "나아가는" 것에 관한 것이므로 이런 질문들이 관련없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하지 말라. 그 질문들은 관련있는데, 드라마 상에서 관련성 있게끔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선두에, 중심에 있다가, 캐릭터들이 개의치 않는다는 설정하에, 갑자기 무시되는데, 따라서 우리도 개의치 않아야 하는가?
그건 그냥 서투른 이야기 전개일 뿐이다.
이제 자문하는 건 이것이다. 큐즈와 린델로프(제작자들)가 다른 드라마를 만든다면, (그리고 장담컨대, 곧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시청자가 될 것인가?
아니다. 골대가 하시라도 옮겨질 수 있는 게임을 왜 따라가겠는가?


월트가 "특별하다"는 것; 엄마와 살 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의 요점은 무엇이었는가? 새에 관한 책을 읽고 있을 때 새가 유리창문에 부딪쳤다. 월트가 주변에 있을 때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에 관해 양부가 마이클에게 언급한 내용도 있었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건가?)
이건 단지 제작진이 추구하던 아이디어였는데 나중에 빼기로 결정한 것인가?


나는 캐릭터 요소 "그리고" 사이언스 픽션 요소 때문에 로스트를 시청했다. 피날레가 카타르시스적이고 그 모든 재결합을 봐서 행복하지만, 속은 기분이다. 피날레에서 "모든" 해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섬의 목적; 검은 연기/록이 탈출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섬과 시간 여행의 관계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일반적 개념을 얻기를 기대했다. 작가들이 매주 시청자를 붙잡을, 감질나는 에피들을 창작해 놓고선 미스테리들을 풀어줄 어떤 의도도 없었다고 나는 느낀다. 말은 바로 하자. 작가들은, 캐릭터가 아니라, 섬의 미스테리로 우리를 낚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섬에 관한 그 수많은 대답 없는 질문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로 결말에 대해 만족하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다르마 미스테리는 감당할 수 있다. 그들은 반드시 섬에 연관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섬의 더 큰 목적에 관해서는 만족할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놓친 무언가―내가 고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무언가를 보여줄 분석을 고대하고 있다. 지난 6년간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피날레가 나와 맞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금년의 모든 광고가 모두 해답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자신의 신화에 대한 해답을 밀고 있었다. 동시에, 말하는 바의 의미는 "종결"이었다. 두 서로 다른 것들과 나의 기대가 작가와 광고에 의해 틀잡혔다.

 

-"어더스"는 누구인가?
인간은 올바른 일을 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야곱이 섬에 데려온 사람들/사회들. (그리고 그들이 탐욕과 파괴로 늘상 끝난 것은 아니다.)
-형상과 신전은 무엇인가?
사람들을 섬으로 데려오려는 야곱의 많은 시도 중 하나. 그들이 이것들을 건설했다.
-숫자는 무엇인가?
설명하길 원치 않는 것들 중 하나. 다른 게 아니라면, 최종 후보자를 대표하는 숫자들이다. 발렌치오 방정식을 위한 숫자일 수도 있지만, 이 해답은 스토리 상 나쁠 것이다.
-섬의 파워는 무엇인가?
"The numbers" 에피를 보라. 고대 자기력으로 생명력이거나/아니거나, 코르크로 막혀 있다.
-다르마? 정화/축출(The Purge)?
시즌5(와 그 이전)에서 설명되었다.
-왜 시간 여행인가?
섬의 파워를 보라. 섬의 심장부 근처에 연기 괴물이 설치한 얼어붙은 바퀴.
-데스몬드가 왜 그리 중요한가?
그 정도의 파워/자기력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야곱의 안전 장치.
-위드모어의 목적은 무엇인가?
속아서 지하 바퀴를 돌렸고, 섬에서 추방되었다. 돌아가기를 원한다. 데스몬드를 섬으로 데려가기 위한 것.
-바퀴와 공간 이동 능력은 무엇인가?
섬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 "Across the Sea" 에피에서 설명됨.
-빛은 무엇인가?
섬의 파워는 무엇인가? 부분을 보라
-검은 연기는 대체 무엇인가?
"Across the Sea" 에피를 보라.
-섬은 무엇인가?
코르크 마개이다. 악을 가두고 있다.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다. 코르크로 닫혀 있는, 선한 빛보다는, 이를 택하겠다. (데스몬드가 옮긴 것을 보라. 코르크를 제거하면, 파워가 풀린다. 야곱이 검은 연기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고 추정하겠지만, 나는 그가 섬의 '심장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점들이 이 드라마를 대단하게 만든다. 떠먹여 주지 않고, 생각하게 만든다. 위 질문의 절반은 이미 설명되었다. 설명되지 않은 것들은 대답되지 않은 채로 두는 게 좋을 것이다.


주요 질문/미스테리가 대답되지 않았다고 열받은 사람들에 대한 나의 반응: 그런 질문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은 해답이 제시되었을 경우 얼마나 더 열받았겠는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섬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더 큰 질문에 대해 만족스러운 해답을 생각해 낼 수 없다고 본다. 내가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나를 실망시킨다.
우리가 어느 정도의 생각들을 가지기에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그보다 얼마나 더 많든지 간에 분명히 실망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는, 모든 걸 깔끔하게 묶어 포장해 놓는 것보다, 이 드라마가 많은 부분을 열린 채로 종결하여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좋다. 제작진이 제시할 어떤 단정적 해답들도, 그들이 제시한 정보보다는, 더 많은 팬들을 더 화나게 만들 것이다.
현재 모든 것에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적어도 드라마의 종결이 전체 드라마의 정신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결말이 좋았다. 물론 나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지 않았다. 인생은 모든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체 인생"이라고 해서 꼭 제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나에게 있어선 이 드라마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이 세상에 넘쳐나는 캐릭터들에 관한 것이다. 피날레에서 일부 사람이 비쳐지지 않아 좀 실망스러웠다.
나는 결말을 보면서, 그들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다른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음의 위대한 모험으로 뛰어들기 위해 함께 모이기로 마련한 기회로 보았다. 아무도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미래를 부딪치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매우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감정적으로는. 하지만 지적으로는? 그쪽에 초점을 맞춘 이들이라면 아무도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이 드라마에 대한 핵탄두 폭발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직한 해답을 달라.
시즌5의 절반을 소비했고, 시즌6의 "플래쉬사이드웨이즈의 이유"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추락 생존자들이 깨어나기 위한 "대기실"로 판명되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폭탄을 터뜨린 것이 이룬 일은 전혀 없다. 지상에 큰 구멍을 만들고 줄리엣을 죽인 일밖에 없다. 과거는 바뀌지 않았다. "섬이 대양 바닥에 가라앉음에 따라, 어떻게 각자의 인생이 바뀔 수 있을까?" 곰곰히 추리하던 것이 모두 헛것이 되었다. 플래쉬사이드웨이즈가 "대기실"이기 때문이다. 줄리엣만 죽고 다른 이들은 30년 후로 돌아왔다. 어처구니 없다.
신전―시즌6 절반의 커다란 낭비. 도겐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죽은 후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며 다시 언급되지도 않았다. "어둠에 대해 사람들을 시험하는 일"에 관해 생각해 보라. 분명히 틀렸다. 아무튼 사이드가 종국에는 악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료 샘"―일단 잭이 새로운 야곱이 되면 정상으로 돌아왔어야 하며, 잭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어야 한다.
섬의 심장부가 MIB를 연기로 바꾸었지만, 데스몬드와 잭은 바꾸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추락 생존자들이 어떻게 연옥/대기실을 건설할 수 있었으며, 악하고 죽이는 키미같은 사람들을 채울 수 있었는가? 사이드와 진은 "천국의 대기실"에서 사람들을 죽인다. 들어가기 직전에.........?
이런 질문들은 "대답되지 않은 채로 두는 게 더 나은, 로스트의 위대한 미스테리들"이 아니다. 이런 질문들은 왜 달튼 팀이 지난 두 시즌 동안 약물에 빠져서 우리들을 그들의 "두꺼비 씨의 야생 질주"(Mr. Toad's Wild Ride)에 데려갔는지를 묻고 있는 더 많은 질문들이다. 완전히 손을 뗀 것처럼 느껴진다.
끝으로, 검은 연기가 록을 도구로 삼아 섬을 떠나려는 것은 정말 어이없다. 당신이라면 실제 세상에서 살 목적이 아무 것도 없는 60세 루저로서 유쾌하고 훌륭한 인생을 살려고 할 것인가? 아마도 그의 몸으로 살 날이 10년 정도일 것이다. 나라면 분의 몸을 취해서 실제 세상에서 좀 살아보려고 할 것이다.

 


서술적 관점에서 본다면, 검은 연기는 록과 같은 외모를 가짐으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록이 바보이자 헛되게 죽었다고 말하면서 악의 기쁨을 표시하였다. 잭은 록의 기억을 모독하지 말라고 말했다.
(텔레비전 관점에서 본다면, 록을 연기했던 배우가 시즌6에서 검은 연기가 되게끔 계속 사용하기로 선택한 것이 기쁘다. 시즌 전체에 걸쳐 분이 뛰어 다니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스트 전반의 요점에 대한 나의 두서 없는 생각; 다른 모든 것은 확실할 필요가 없는 이유―인생에서 각자는 서로 다른 해답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트의 캐릭터들에게 있어서, 시리즈 전체에 걸쳐, 가장 중요한 사항이 된 것은 모두가 섬을 함께 떠나는 것이었다. 그 기간은 모두에게 감정적으로 그토록 강렬한 시간이었기에, 그들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하고 그토록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한 일이 없을 것이다. 섬에서든 생존자로서 나중 생애에서든 그들이 죽었을 때는 완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 모두가 살고 죽을 때 함께 한 것은 그 사람들을 잃었다는 회한이었으며, 그 부분이 미완성이었다. 그들 각자가 죽었을 때 그들은 나아갈 수 없었는데, 각자가 다시 안전을 느낄 수 있도록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를 집에 안전하게 데려오기 위해 "올바른" 일을 하지 못했다는 회한; 자신의 결정이 부차적으로 자신뿐 아니라 서로의 생명에 대해 생사를 결정하는 상황이 되었던 경위를 늘상 안고 있었던 것이다. 생존자로서의 섬에서의 생활 기간에 그들은 생존하려고 노력하는 직접적 관점에서 생(또는 사)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세상(또는 섬)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자신의 의미와 자신의 가치와 자신을 끊임없이 숙고하게 만들었다. 시초에 그들 모두가 공통으로 갖고 있던 것은 의구심이었다. 그들 자신에 대한 의구심과 "다른 이"(어더스)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그들이 자신을 믿도록 자기 숙고를 하게 하였다. 일부 사람은 자신을 믿도록 인도되기 위해 "어더스"를 믿을 필요가 있었다. 종국에 그들이 공통으로 가진 것은 자신에 대한, "어더스"에 대한 "믿음"; 생에 대한 더 깊은 의미와 연관성에 대한 믿음이었다. 생애 중에 아무것도 완전히 혼자 할 수는 없으므로, 그들은 자신의 스토리의 조각들을 서로 연결하였다. 그런 회한과 그런 희망을 영원히 안고 있었기에, 서로를 안전하게, 올바른 방법으로, 아무 회한 없이, 다시 발견할 때까지는,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구속은, 시초에도 종국에도,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