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와 성공의 상관관계
윈스턴 처칠, 지네딘 지단, 안드리 애거시, 브루스 윌리스, 김광규. 언뜻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
는 이들의 공통점은? 그렇다. ‘탈모(대머리)’되시겠다. 역사적으로 대머리들이 이룬 업적은 이루 말
할 수 가 없다. 영국 2차대전의 영웅 처칠은 물론이거니와, 지단은 프랑스 역사상 최초로 98년 프
랑스월드컵의 우승으로 이끌었다. 어쩌면 이들이 대머리 이었기에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몇 가지 예를 더 살펴보자.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리그에 ‘라치오’라는 명문 팀이 있다. 내가 15년째 서포팅하고 있는 팀이다.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 이 팀의 별명은 ‘탈모군단’이다. 팀의 주전 중 상당수는 대머리이며, 풍성한 숱을 자랑했던 선수조차 이 팀에 발을 딛는 순간 탈모가 시작된다. 2004년 불과 19세의 나이에 루마니아에서 온, 왼쪽 수비수 ‘스테판 라두’ 역시도 이적 직후 탈모대열에 합류하여 9년째 숱이 적어지고 있다. 어떤 날은 11명의 주전 선수 중 6-7명의 대머리들이 경기장을 누빈다. 같은 고민을 가진 선수들의 조직력은 리그 최고수준이며, 낮 경기 중엔 상대방 골키퍼 앞에서 머리로 햇빛을 반사시켜 시야를 흐린 후 득점에 성공하기도 한다. 팀의 성공에 열쇠를 쥔 탈모인 것이다.
“느그 아부지 모하시노?”로 유명한 배우 김광규는 30대 초반에 이미 심각한 대머리가 되었다. 무명배우였던 그는 맞춤형 가발을 쓰고 촬영한 프로필사진을 들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지만 단 한 통의 섭외 전화도 받지 못했다. 유명배우가 될 길도, 가난을 벗어날 길도 찾지 못해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발을 벗고 대머리 그대로의 상태로 오디션에 응시한 뒤 여기저기서 그를 찾기 시작했고 결국 영화’친구’에서 중년의 무서운 선생님 역할로 스타가 될 수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4세에 불과했으며, 사정없이 뺨을 맞은 ‘학생’ 유오성은 김광규보다 실제 한 살 형이었다. 이후 김광규는 모든 드라마의 학생주임 역할에 1순위 캐스팅으로 출연할 수 있었다. 이게 다 대머리 덕분이다.
마지막으로, 로마의 위대한 영웅 ‘율리우스 시저’의 예다. 우리가 잘아는 월계관을 쓴 그의 모습은 사실 벗겨진 머리를 감추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그의 정적들이 그를 공격할 때 항상 대머리를 언급해 화를 돋웠다. 하지만 탈모로 고민하는 그를 안타깝게 여긴 연인 클레오파트라는 생쥐, 곰의 기름, 사슴의 골수 등의 치료제를 만들어 주었다. 대머리가 둘 사이의 사랑을 더욱 돈독하게 해준 것은 아닐까? 이 역시 대머리 덕분이다.
나에게도 탈모가 찾아왔다. 최근 몇 달 사이 머리 숱이 1/3은 줄어든 것 같다. 심각한 걱정으로 입맛도 잃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었다. 탈모전문병원, 피부과도 다 다녀보았다. 하지만, 탈모는 멈추지 않고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한 그의 질주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나의 팀 라치오’의 중계를 보던 중이었다. 하늘색 유니폼위로 반짝거리는 대머리의 라치오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하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탈모는 ‘이미 15년째 나와 함께 해왔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어찌되었든, 성공한 인생을 살 필요충분 조건 중 하나인 탈모가 이미 충족되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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