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J'S 유명인 이야기

가톨릭대에 100만 달러 쾌척한 재미 기업인 이덕선·덕형 형제

by forzalazio 2009. 11. 5.

기부는 괜찮은 사업, 나눠줄 때마다 더 많이 돌려 받아

가톨릭대에 100만 달러 쾌척한 재미 기업인 이덕선·덕형 형제

구희령 | 제138호 | 20091031 입력
지난달 29일 가톨릭대에 100만 달러를 기부한 이덕선(왼쪽)·덕형 형제는 “부모님께 나눔을 배웠다”며 미소 지었다. 최정동 기자
마을에 축구장과 성당을 짓고 ‘문맹 퇴치’에 앞장섰던 아버지, 피란민 1000여 명에게 ‘강냉이죽’을 쑤어주던 어머니. 부모는 자식에게 ‘나눔의 DNA’를 줬고, 그걸 받은 형제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번 돈을 조국의 대학에 기부했다. 재미교포 사업가 이덕선(70·얼라이드테크놀로지그룹 회장)·덕형(50·글로텍 회장) 형제. 두 사람은 지난달 29일 가톨릭대에 100만 달러(약 12억원)를 냈다.

형제의 부친 이원길(2001년 작고)씨는 한국전쟁이 발생하기 전 고향 황해도 연백의 농촌을 ‘문맹 없는 마을’로 만들었다. 대학생을 초빙해 주민에게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게 한 것이다. 남으로 피란한 뒤에는 구호물자인 옥수수 가루와 우유를 얻어 피란민들에게 점심 때마다 강냉이죽을 1000그릇씩 나눠줬다. 부친과 함께 평생을 헌신한 어머니 황화순(90) 여사는 지문도 다 지워졌다고 한다. 형제는 가톨릭대 강연에서 “늘 이웃과 나누면서 행복해하셨던 부모님의 뜻을 이어 받아 기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톨릭대는 지난달 29일 이덕선·덕형 형제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형제의 부친을 기려 ‘버나드 원길 리 콘퍼런스룸’을 헌정했다. 왼쪽부터 이덕형 회장의 아내 전경란 여사, 한훈·이덕선 회장 부부, 이덕형 회장, 박영식 가톨릭대 총장, 조규만 주교, 이덕선·덕형 회장의 형제인 이덕효 워싱턴 에피파니 성당 주임신부. 콘퍼런스룸 앞 부조는 미술을 전공한 이덕형 회장이 그린 부친의 초상이다.
형제를 이날 오전 숙소인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만났다.
“1966년에 미국으로 떠날 땐 평생 가족들도 못 만나고 된장찌개나 김치도 못 먹을 줄 알았는데….”

5남1녀 중 맏이인 이덕선 회장의 말에 당시 여섯 살이었던 막내 덕형씨가 “형이 떠날 때 초상집 같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스물여섯 살 때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떠났다. 돈이 없어 구호물자를 내리고 돌아가는 화물선을 얻어 탔다. 워싱턴에 도착한 이 회장이 잠시 의탁했던 친척집의 아주머니가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마침 수퍼컴퓨터를 만드는 회사 ‘컨트롤 데이터’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양성 과정을 열었다. 이 회장은 20명의 학생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5개월 뒤 이 회장을 포함해 9명만이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컨트롤 데이터에 프로그래머로 취직했다.

신혼생활 6개월째였던 이 회장은 아내에게 “밤에도 주말에도 회사에 가서 일할 테니 나를 찾지 말라”고 했다. “학력이나 경력이 빼어나지도 않고 남다른 재주도 없으니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었죠. ‘이 친구에겐 뭐든지 가져가면 문제가 해결되더라’는 좋은 평판이 생기더군요. 이것이 평생의 자산이 됐습니다.”

2년을 그렇게 일했더니 다른 회사(웨스탯)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곳으로 옮긴 뒤에도 ‘밤낮 없이, 주말 없이’ 일을 했다. 입사 7년 만인 76년 부사장이 됐다. 이 회장은 89년 독립했다. 웨스탯 회장인 조셉 헌트가 그를 적극 도왔다. 일을 열심히 한 데 대한 보상으로 회사 직원 6명을 보내주고, 웨스탯 안에 사무실도 만들어 줬다. 사업 초창기엔 월급까지 내줬다. 이 회장은 “성실히 일해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면 뜻하지 않는 도움을 받게 된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세운 ATG는 현재 직원 600명, 매출 8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IT네트워크 시스템 업체로 미국 국무부·국방부와 육·해군 등 정부 기관이 고객이다.
이 회장은 웨스탯 부사장이 된 뒤 처음 고국 땅을 밟았다. 여섯 살 막내가 중학교 1학년으로 훌쩍 커 있었다. 이덕형 회장은 그때를 떠올렸다. “형이 제 얼굴을 못 알아 보더라고요. 저는 형 목소리를 잊어버렸고….”

이 회장은 부모님부터 차례로 미국에 초청했다. 지금은 6남매가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 처남 이수동(드라마 ‘태왕사신기’에 출연한 필립 리의 부친) STG 회장, 이덕형 회장은 이덕선 회장의 도움을 받아 IT사업을 시작했고 모두 성공했다.
“건축 사업을 하다가 대금을 못 받아 95년 10월에 도산을 했습니다. 형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했지요.”

스무 살 터울의 아들 같은 막내 동생.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워 사업 자금도 쥐여줄 법한데 맏형은 ‘정공법’을 택했다. “돈을 줄 게 아니라 돈 버는 법을 알려줘야지요.”

그는 지사로 동생을 보냈다. 창고관리 부서를 비롯해 모든 곳을 2주씩 돌게 했다. 5개월쯤 걸렸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당시엔 매우 귀했던 전산망 자격증 보유자들이 큰소리치고 있다는 걸 동생이 알게 됐다. 형에게 말했다. “자격증 가진 사람을 좀 더 뽑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형이 답했다. “네가 한번 따 보는 게 어떠냐.”

동생은 9개월 동안 공부에 매달렸다. MCSC, 노벨 CNA 등의 자격증을 땄다. “보통 2년은 걸리는데… 동생이 참 열심히 했습니다.”

그 자격증으로 이덕형 회장은 97년 2월부터 12년 동안 미국 국무부에서 일했다. ‘1인 기업’으로 회사를 등록해 놓고 사업도 계속 불려나갔다. 현재 이덕형 회장의 글로텍은 직원 300명, 매출 3000만 달러 규모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 대사관의 시스템도 전담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에는 미국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도 한몫했다. 미국 중소기업청(SBA)은 소수민족이 운영하는 회사에 정부 프로젝트 입찰 특혜를 주는 8(a)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9년 동안 수익 2300만 달러를 넘기면 ‘졸업’이다. 졸업률은 불과 6%. 이덕선·덕형 회장과 처남 이수동 회장은 모두 졸업에 성공했다.

이덕형 회장은 “형에게 돈 버는 법을 배웠지만 수십년 동안 형이 베풀고 사는 것을 보면서 돈 쓰는 법을 배운 것이 더 소중하다 ”고 했다. 이덕선 회장은 모교인 한국외대에 지금까지 13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이민 가느라 학업을 마치지도 못했지만 조국의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회사 직원들이 대학에 진학해도 학비 전액을 댔다. 대학을 중퇴한 직원의 등을 억지로 떠밀어 학업을 마치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동생도 이런 형을 그대로 따라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형제는 워싱턴 인근에 노인요양시설을 겸한 수녀원도 짓고 있다. 대지 4만3000㎡, 건평 3300㎡ 규모로 연말 완공 예정이다. 현재까지 땅값을 뺀 공사비만 180만 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형제는 “앞으로도 고향인 한국을 계속 돕고 싶다”고 했다. “자기 행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출처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14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