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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s 하루키 이야기

하루키가 변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소설 '1Q84'

by forzalazio 2009. 9. 17.

상실 대신 사랑…하루키가 변했다

[한겨레]

정혜윤의 새벽 3시 책읽기 /

〈1Q84 1·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윤옥 옮김/문학동네·각 권 1만4800원

하루키가 앞으로 몇 년에 걸쳐 몇 편의 장편소설을 더 쓰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소설을 기점으로 확실히 변했다. 상실을 노래하던 젊은 작가는 이제 온기를 이야기한다. 재즈와 맥주, 담배, 위스키 같은 대중문화의 기호 안에, 그 내면이 정직하고 순수하고 조심스러운 젊은이의 우수와 상실감, 현실에 깊이 개입할 수 없음을 넘치지 않게, 마치 해변의 쓸쓸한 바람이 스며들듯이 그려내던 세련된 작가는 이제 그 젊은이들의 내면과 존재의 중심 안에 상실 대신 강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채워 넣었다. 이번 하루키 소설 속 사랑은 현실에 닿아서 부식되거나 왜곡되는 사랑이 아니고 새로운 의욕과 더욱더 절실한 현실을 낳는 사랑이다. 현실에선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슬픈 사랑들의 복고풍의 숙명은 이 소설에 이르러 같은 달을 바라보며 순수성과 강함을 지켜나가게 하는 미래의 운명으로 바뀌었다. 이 소설의 핵심 장면은 열 살 먹은 한 소녀가 한 소년의 왼손을, 강하고 따뜻하게 잡는 어느 방과후의 초등학교 교실에 바쳐졌다. 그 사이에 둘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서로가 서로의 일부를 나누어 가졌다. 그 둘이 마음이나 몸의 일부를 나눠 갖고 그 순간 중요한 뭔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이 소설 전체를 끌고간다. 그들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서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고 서른 살에 이르러서도 1984년의 세계가 아니라 수수께끼 가득한 1Q84년의 세계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글이 에쿠니 가오리류의 연애 소설이 아닌 이유는 (도쿄대 전공투 세대와 적군파를 다분히 연상시키는) 자본주의에 좌절한 일단의 젊은이들이 일군 해방구 공동체가 유사 종교집단이 된 것, 빅 브러더 대신 등장한 리틀 피플의 존재 등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와 손을 꽉 맞잡는 사랑이 더욱더 절실한 가치로 떠오르는 까닭은 우리가 알던 세상, 혹은 이념, 혹은 신념이 모조리 와르르 무너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루키는 이 소설에 ‘1Q84’란 제목을 달았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 소설이 낳은 가장 정직하고 군더더기 없이 강한 여자 캐릭터로 뽑을 수 있는 킬러 아오마메에게 살해당하기를 갈망하는 종교집단의 리더는 1Q84년에 대해서 ‘1984년도 1Q84년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성 요소를 갖고 있다.

그 세계를 믿지 않는다면 그곳에 사랑이 없다면, 모든 건 가짜야’라고 말한다. 이 소설의 주요 주인공들은 모두 인간 사이의 깊은 관계를 잃고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모두들 지키고 싶은 세계가 있거나 적어도 그 세계를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결국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든, 그리고 그 또는 그녀가 누구이든 그것은 이차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일차적인 것은 무엇일까? 어느 날 신비로운 아름다운 열일곱 소녀의 원고를 고치면서 1Q84년 속으로 끌려들어간 남자 주인공인 덴고는 하루키의 다른 어떤 남자 주인공들보다도 그 해답을 명확하게 알아챈다. 그는 그것을 한 단어로 불러본다, ‘아오마메’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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