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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S 유명인 이야기

'연아 덕후', 스토커 또는 훌리건의 탄생-팬에게 악담한 '연아母', 그 블랙코미디의 진실

by forzalazio 2009. 7. 16.

'연아 덕후', 스토커 또는 훌리건의 탄생

[정희준의 '어퍼컷'] 팬에게 악담한 '연아母', 그 블랙코미디의 진실

기사입력 2009-07-15 오전 9:08:17 /프레시안

 

내 이런 일 생길 줄 알았다.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가 드디어 김연아 광팬들에게 "앞으로 연아 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며 한 방 제대로 먹였다. 사실 그 조짐은 이미 오래 전에 싹텄다. 2008년 12월 고양시에서 열렸던 그랑프리파이널대회 직후 나는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다. "김연아 팬들을 보면 어째 좀 불안하다."

그 때 김연아 팬들이 경기장에서 보여준 폭력적(?)인 응원은 '평범한 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것이었다. 자신들의 '연아 사랑'을 과시하고자 경기장으로 쳐들어간 이들은 피겨스케이팅에서 필수적인 관전 예절조차 무시했다. 한 외국 선수의 말처럼 그들은 '미친 듯한' 괴성과 비명을 지르며 카타르시스의 수준을 넘어 자아도취에 빠졌다. 그들은 김연아를 응원하러 간 게 아니라 '우리 김연아'의 인기와 자신들의 사랑을 외국인과 카메라 앞에서 과시하고 증명하고자 경기장으로 진군한 것이다.

'자뻑'을 위하여

이들의 '미친 듯한' 응원 덕분에 김연아는 그때까지 실수 한 번 안 하던 트리플 살코에서 엉덩방아를 찧었고 장기인 트리플 러츠는 돌다 말고 내려왔다. 골프스윙 하려는데 카메라셔터 눌러대고, 바둑대국장에서 비명 질러대는데 잘 할 선수가 있을까. 결국 팬들이 김연아에게서 홈어드벤티지를 뺏어 가버린 것이다. 이들은 한 마디로 '자뻑'을 위해 '팬질'하는 부류다.

그때 이틀 동안 곰인형만 1000개가 넘게 던져졌다는데 재미있는 것은 김연아 팬들이 인형을 택배 주문해서 다른 입장객들에게도 나눠줘 이를 던지게 했다고 한다. 연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자는 것이었단다. 여러분들, 간혹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겠다며 나설 때 벌어지는 곤혹스러운 '시추에이션'에 대한 경험들이 다들 있으실 것이다. 가끔 뉴스에도 나오지 않던가.

그렇다. 과격(?) 김연아 팬들은 자신의 사랑을 전달하는 정도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이를 증명하려 한다. 이건 '사랑 고백'이 아니다. '사랑 증명'이다. 스토커의 탄생이다.

김연아는 현재 한국 사회 최고의 인기인이다. 홈페이지 방문자 수 20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고 한다. (박태환 홈페이지 누적 방문자 수는 668만이란다.) 김연아 에어컨, 김연아 화장품, 김연아 패션에 이어 김연아 휴대전화까지 등장했다. 삼성애니콜 광고 모델이 되면서 명실상부한 광고퀸에 등극한 것이다. 옛날에 교정을 했다고 해서 김연아 신드롬은 치과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제까지 20여 개 업체와 5억~10억 원짜리 광고를 계약할 정도로 광고를 싹쓸이 하는 바람에 광고도 '김연아 나오는 광고'와 '김연아 안 나오는 광고'로 나뉜다 할 정도다. 그를 응원하는 수많은 팬카페가 생겼는데 나가도 너무 잘 나가면 그 '반작용'도 생기는 법. '김연아 안티 카페'가 등장했다. 그러나 역시 김연아는 차원이 다른 스타다. 김연아 안티를 박멸(!)하기 위한 '김연아 안티 퇴치 카페'마저 등장했다.

그러면서 김연아 팬들은 진화했다. 얼마 전까지 김연아 광팬들은 '승냥이'로 불렸는데 지금 이들은 보다 조직적,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연아 덕후'로 변신했다. (덕후란 주로 특정 분야나 취미에 열중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을 지칭하는 일본어 오타쿠의 변형어.) 그리고 흔히 보던 아이돌 댄스그룹의 팬클럽을 닮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팬에게 주먹감자 날린 연아 母

▲ 지난 4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 특설링크에서 김연아 선수가 열연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다 지난 주 드디어 일이 터진 것이다. 피버스케이팅닷컴이란 김연아 팬카페 게시판에 김연아 어머니 박미희가 등장해 '그만들 좀 하시죠'라는 글을 올렸는데 결론은 이거였단다. "이번 쇼 이후로 다시는 연아가 아이스쇼에 서지 않을 것을 약속 드리죠."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 사이트는 디씨인사이드 피겨스케이팅 갤러리의 열혈 김연아팬들이 차린 사이트란다. 그런데 김연아 어머니가 나타나 "니들 앞으로 다시는 연아 볼 꿈도 꾸지 말아라"며 악담을 하고 간 것이다. 한마디로 선수의 부모가 자기 자식 팬들에게 주먹감자 먹여 버린 꼴이다. 그것도 엿을 듬뿍 바른 주먹감자를. 21세기 한국은 이렇게 희한하다.

아무리 희한해도 이유가 있는 법. 어쩌다 선수 측과 팬 간에 이런 묵직한 주먹감자를 주고 받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니 이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였다.

8월엔 두 개의 아이스쇼가 연달아 열린다. 1~2일엔 '현대카드 슈퍼매치 VIII 슈퍼클래스 온 아이스'가, 14~16일엔 '삼성애니콜하우젠 아이스 올스타즈 2009'가 열린다. 이 긴 이름들 다 외울 필요는 없고 그냥 '현대쇼'와 '삼성쇼'가 비슷한 시기에 열려 경쟁하는 상황으로 이해하면 되시겠다. 그런데 김연아는 삼성쇼에만 출연한다. 애니콜 등 삼성으로부터 받았던 광고비가 더 셌나보다.

문제는 IB스포츠가 경쟁 아이스쇼인 현대쇼에 출연키로 돼있는 외국 유명 선수들을 자기네 삼성쇼에도 출연할 거라고 함부로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겹치기 출연'의 주인공은 올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싱글 우승자 에반 라이사첵, 지난해 세계선수권 남자싱글 우승자 제프리 버틀, 올해 세계선수권 여자싱글에서 김연아에 이은 은메달리스트 조애니 로셰트 등이다.

연아 덕후들과 IB스포츠 : 딱 어울리는 한쌍!?

그러나 이들 외국 선수들이 한국에서 보름 이상 머물러가며 경쟁 아이스쇼에, 그것도 연달아 출연할 리도 없다. 더구나 무엇보다 이들은 IMG 소속이다. 타이거 우즈의 소속사이기도 한 세계 최대의 스포츠매니지먼트사 IMG는 국내에서는 IB스포츠와는 경쟁 관계, 아니 더 정확하게는 원한 관계에 놓인 회사다. IMG는 바로 김연아의 전 소속사인데, IB스포츠에 김연아를 빼앗긴 후 계약과 관련하여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나는 IB스포츠에게 상도덕은 기대도 하지 않지만 과연 이 회사가 상거래의 기본이나 알고 있는 회산지 궁금하기만 하다. IMG를 제치고 선수 개개인에게 출연을 요청하는 식으로 접근했다던데 정말 그러면 이들이 출연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게다가 맙소사, 소송 상대 아닌가.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구걸 섭외'로 공연 잡았다가 공연 며칠 앞두고 취소하는 공연 기획사나, '한 번 생각해 보겠다'는 저쪽 말만으로도 해외 진출 결정됐다고 뻥 치다가 선수만 희생시키는 축구 에이전트들이랑 다를 바 없다.

결국 IB스포츠는 8일 출연자를 발표하면서 부랴부랴 이들을 애덤 리폰과 셰린 본으로 대체했다. 그러자 이번엔 김연아의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출연 선수들 특히 남자 선수들의 지명도가 현대쇼 쪽보다 처진다는 게 불만이었다. 현대쇼는 라이사첵, 버틀 외에도 2006동계올림픽 싱글 금메달리스트로 2010동계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다투게 될 '피겨 황제' 예브게니 플루셴코도 선보인다. 언론에선 이들을 '꽃미남 군단'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현대쇼가 강조하는 게 바로 "김연아 빼고 다 나온다"이다.

반면 김연아가 출연하는 삼성쇼의 간판 선수들은 대부분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이다. 그런데 겹치기 논란과 함께 출연이 취소된 라이사첵과 버틀을 대신해 월드주니어피겨스케이팅 2연패에 불과(?)한 아담 리폰이 출연진으로 확정되자 연아 덕후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너무 어려도 문제다. 그래서 이들은 아담 리폰의 홈페이지로 달려가 "정상급 선수도 아니면서 왜 연아쇼에 출연하느냐"며 인신 공격을 날리고 귀국(?)하기도 했다.

이들 덕후들은 또 김연아에 대한 더 높은(?) 대우를 요구했는데 이들 눈엔 연아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쇼에서 여성그룹 다비치가 김연아의 갈라 프로그램에 맞춰 노래를 직접 부른다고 발표했더니 이번엔 다비치도 연아의 격에 맞지 않는다며 다비치에게 너희가 어떻게 연아와 같은 무대에 서냐며 망신을 주기도 했다. 또 이들은 IB스포츠에 이를 항의하면서 김연아의 사진 크기가 다른 선수들과 비슷한 것도 시비를 걸었다. 이런 식으로 IB스포츠에 사사건건 항의를 해 관계자가 해명을 하면 또 그 해명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 보다 못해 김연아 어머니가 등장한 것이다.

스토커인가, 훌리건인가?

이들은 자신들이 김연아 팬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방을 싸돌아 다니면서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모욕 주고 집단 폭행(?)했다. 물론 자기들 말로는 김연아에 걸림돌이 되는 이들을 제거한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자기들 맘에 들지 않으면 쫓아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마치 김연아를 책임지는 '김연아 수호신'이라 굳게 믿고 있다. 착각도 참 가지가지다.

아이스쇼의 기획과 출연진까지 간섭하려 드는 이들의 실상은 '김연아 스토커 클럽'이다. 이들이 착각과 오바를 번갈아서 제대로 해주는 바람에 우리는 TV 아니면 이제 김연아도 못 보게 생겼다. ("당신들 책임져!") 또 이들은 그 유명한 훌리건이다. 과거 영국 프로축구가 유럽에서도 2류로 추락하게 만든 장본인 말이다. 유럽 전역으로 팀을 쫓아다니며 사고를 치는 바람에 영국의 프로축구 구단들이 결국 이들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았던가.

분명 팬덤은 비교적 새로운 문화 현상이다. 그들의 목소리도 커졌고 그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장비나 차량을 선물할 정도로 돈도 들인다. 인형에게 옷 입히고 가구를 모으듯, 또 아바타 꾸미듯 정성을 들인다. 이는 스타 하나를 찍어 자신이 원하는 스타로 꾸미려는 욕망의 표출이다. 여기에서 '내 것'이라는 집착이 생기기 시작한다. 또 그 스타가 자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또 자신이 그 스타를 책임져야만 한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혹 팬덤이 막 나가면 그 끝은 무엇인가에 관심 있는 분들은 롭 라이너의 1990년 영화 <미저리>를 경건한 마음으로 일람하시라.)

'내 것'이라는 집착, 그리고 착각

그러나 착각이다. 스타는 기획사가, 방송국이, PD가, 인터넷이 만든다. 그들에게 팬이란 방청석을 채워주고 '끼약~'을 하는 소품일 뿐이다. 그래서 스타들은 "여러분~ 사랑해요~"를 외치고는 밖에서는 경호원을 고용해 가까이 오려는 팬들은 조인트를 까고 팔꿈치로 밀어버리지 않던가.

몇 년 전 최고의 인기 댄스그룹이 해체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팬클럽이 기획사로 쳐들어갔다. 당시 최강이라 불려지던 팬클럽이었다. 기획사 1층 유리창까지 박살이 났다. 팬클럽의 요구는 당돌했다. 우리가 앞으로 제대로 키워줄 테니 해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키워준다는 게 방송 출연 때나 공연 때 더 열심히 소리 지르고, 방청석에서 다른 가수 팬클럽 끽소리도 못하게 확실하게 겁주고, 음반 나오면 다섯 장씩 사 주고, 뭐 이런 거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런 열정적 팬클럽은 기획사나 그 댄스그룹에 아무런 '팩터'가 되지 못한다. 멤버들이 각각 밥집 차릴 정도의 돈을 손에 쥔 그 그룹은 예정대로 해체됐다.

사실 일부 과격 김연아 팬들은 바로 이런 팬덤의 한계를 잘 알아챈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몰이성적이고 공격적인 팬질을 서슴지 않는 것은 팬질도 어정쩡하게 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팬답지 않은 행동과 요구를 하게 되고 그러다 자신들이 언론에 노출되거나 의견이 반영되면 자뻑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내성을 키워준다. 결국 이들의 행동은 하루하루 그 강도를 더해가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김연아, 과연 무엇을 선택했나

한 가지 더. 이젠 김연아 팬 못지 않게 김연아도 심히 걱정 된다. 스폰서십 계약이야 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이니 당연한 것이고 광고 출연으로 그간의 고생을 보상 받을 수도 있다. 나라도 광고 찍겠다. 그러나 이 어린 선수는 솔직히 뜨자마자 너무 많은 광고와 스폰서십계약을 맺었다. 김연아의 주변을 둘러보라. 온통 돈이고 이해관계다.

내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미리 벌어두자는 것인가. 스무살도 되지 않은 아마추어 선수의 '관계'가 온통 돈 관계 뿐이다. 돈으로만 관계를 맺어 놓으니 이런 일도 생기는 것이다.

박세리가 미국 진출 후 대박을 터뜨르면서 그의 주변엔 날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당시 박세리 후원사는 삼성물산이었지만 박세리가 너무 예상 밖 대박을 터뜨리자 어찌해야할지를 몰랐다. 박세리는 곧 온갖 이해관계에 얽매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의 골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박세리를 담당했던 당대 최고의 골프 코치 데이비드 리드베터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리드베터는 그녀와의 결별을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며 '분한 듯 비속어까지' 사용하며 그녀와의 기간을 '고통'에 비유하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 때 그의 이야기가 바로 선수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는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추락하던 영국 프로축구가 그랬듯 최근 스포츠에서의 상업주의는 하나의 뚜렷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바로 '팬'과 단절하고 '고객'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쫓아다니며 '깽판' 치는 팬, 요란하긴 한데 돈은 되지 않는 팬을 버리고 자신을, 자신의 상품을 구매해 줄 수 있는 고객(customer) 말이다. 혹시 김연아 측의 선택이 바로 이것이었던가.

▲ "바로 '팬'과 단절하고 '고객'을 선택하는 것이다. 혹시 김연아 측의 선택이 바로 이것이었던가." 한 전자제품 광고에 나온 김연아 선수. ⓒ뉴시스

도대체 말리는 사람도 없구나

우리는 쇼만 즐긴다. 광대를 보며 환호한다. 그러나 광대 걱정은 하지 않는다. 뭐 사실 누가 하겠는가. 예를 들어 우리가 언제 미셸 위에 대해 걱정 내지는 비판해 본 적 있는가. 단 한 건의 기사도 못 봤다. 우리는 우리 딸, 우리 손녀처럼 그를 대하지만 정작 그의 미래를 걱정하진 않는다. 그저 그를 보고 즐길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활동하는 미국의 언론과 학자들은 미셸 위를 염려하며 그의 부모를 비판한다. 미국에서 그의 부모는 자식 망치는 부모로 유명하다. 미셸은 아무 것 모르고 운동만 하는 '아이'인데 그의 이미지는 이미 망가졌다. 부모 때문이다. 수많은 스포츠와 골프 칼럼니스트들이 비판하더니 얼마 전엔 책까지 나왔다.

김연아를 둘러싼 전투(錢鬪)가 치열하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다. 부모, 소속사, 팬들, 언론, 그리고 이를 보고 즐기는 국민들. 딱 집어 뭐라 말하기 쉽지 않은, 서글픈 영화 같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