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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s 하루키 이야기

【「1Q84」에의 30년】무라카미 하루키씨 인터뷰(하)

by forzalazio 2009. 7. 2.

수도고, 택시, 비상 계단. 「1Q84」의 세계는, 여기로부터 시작된다(도쿄도내에서)=요시카와능미촬영 소설보다 강력하게 입체적으로

 

2의「언어」교류시켰다

 

「바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로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군상 신인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1979년 6월. 30년간 중에, 작가와 시대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오자키 마리코)

 

 무라카미(이하 M) 7년전의「해변의 카프카」이후, 고전의 새번역을 차례차례로 해냈다. 체드라의「롱·굿드바이」, Salinger의「캐쳐·인·더·라이」, 그리고「티파니에서 아침 식사를」「그레이트·개트비」……모두 훌륭한 영어의 문장. 그것을 어떻게 일본어로 옮겨 가는지, 번역가로서 책무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붙었다고 판단해 착수해, 어떻게든 넘었다. 그 대신해, 동시대의 미국 소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남으로부터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운다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해 해 나갈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일 것이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리얼리즘의 소설에 한 번 도전해, 저것으로 편해졌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철저하게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문장으로 했던 것도, 「시드니!」 그리고 연일, 올림픽을 봐 30~40매 썼던 것도 좋은 수업이 되었다. 쓰고 싶은데 기술적으로 쓸 수 없는, 이라는 것은 대단히 적어졌다고 생각한다.

 

독창은 끊어지지 않다


 ― ―비주얼인 표현이 우세하게 된 현재, 말의 힘으로 새로운 표현을 개척하는 것은, 이전에 더욱 더 곤란하지 않은 것인가.

M일작 마다 나나름의 새로운 언어 시스템을 개발해 왔다. 이번 삼인칭으로 썼던 것도, 이 큰 소설로 새로운 표현 방법을 시험하고 싶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세계가 펼쳐졌다고 느끼고, 그것은 기뻤다.

 

언어와는, 누가 읽어도 논리적이고 커뮤니케이트 가능한「객관적 언어」라고, 언어로 설명이 대하지 않는「사적 언어」라고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으면, 위트겐슈타인이 정의하고 있다. 사적 언어의 영역에 양 다리를 붙여 거기로부터 메세지를 꺼내, 이야기로 해 가는 것이 소설가라고 생각해 왔다. 이기도 할 때, 사적 언어를 객관적 언어와 잘 교류시키는 것으로, 소설의 말은 보다 강한 힘을 가져, 이야기는 입체적으로 되면 깨달았다. 프로야구의 세·파 교류전과 같이 (웃음).

 

― ―독자의 옆도 언어 능력을 기르는 것은 어려운 시대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이상한나라」(1985년)의 계산사. 그가 살고 있던 그 닫혀진 부자유스러운 세계는, 현재의 사회를 예견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M컴퓨터의 발전은 새로운 계급 사회를 낳으려 하고 있다. 편리하지만, 그 배후에서 프로그래밍 하는 많은 지적 노동자가 필요. 그러한 전문화 중에서 건전한 창조성이 둘러쌈을 받아 세계가 오웰이 그린「1984」화해 갈 우려가 있다.

 

인터넷이 발전해 공통 언어로서의 영어없이는 해 나갈 수 없지만, 한편으로 여러가지 나라가 문화적 특이성을 발신하는 시스템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어떤 시대라도, 코어인 지적 일을 하는 사람이 전체의 5%는 반드시 있고, 얼마나 카피나 페이스트가 횡행해도, 예술적인 관심이나 오리지날인 스타일도 끊어질 것은 없다고 믿고 있지만.

 

자유로움 추구한다


 ― ―세계적인 경제 공황 이래, 미국 문화의 위신도 요동한다.

 

M나는 미국의 신문이나 잡지에 매우 경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라크전쟁 이후, 극단적인 논조에 흔들려 움직여, 그 나라의 미디어는 급속히 낙담하고 있다. 출판사도 기운이 없다. 지금부터는 미국과 유럽, 동아시아간의 차이가 줄어들어, 문화적인 교환은 한층 번창하게 되고, 보다 등가적으로 된다고 생각한다. 「노르웨이의 숲」을 이번에 영화화하는 것은 트란·안·윤 감독.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에 거점을 두는 그이기 때문에 더욱 찍힌다고 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아시아 발신의 영화가 되면이라고 기대한다.

 

― ―온 세상에 무라카미씨의 독자는 벌써 여럿 있다. 일본이나 일본인을 어떻게 의식하고 있을까.

 

M일본인이라고 하는 묶는 방법을 하는 것보다, 이 일본이라고 하는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인론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어 하나 매우, 아직도 거기에는 새로울 가능성이 감춰지고 있다. 하나에 결정하는 것보다는,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싶다.

 

해외 미디어의 취재에 비교적 응하는 것도, 일본에서 자라, 일본어로 살아 온 특수성을 넘고, 내가 일본으로부터 발신할 수 있는 메세지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또,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이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표정에 30년의 충실감   ◎취재를 끝내


정식적 인터뷰는「태엽 감는 새 연대기」이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1996년 이래. 그런데도「오래간만입니다」라고 상냥하게 맞이할 수 있어 모두로부터 오움(진리교) 재판, 9. 11, 넷 사회……싶은 무사히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하야시 야스오 사형수에게 깊게 관심을 대어 반나절에 이르는 심리에서도 쭉 메모를 적고 있었다. 법정에서 사건의 상세를 지켜본 다음, 사형수의 심경을 계속 상상했다고 한다. 작가가 스스로 걸어 나와 맡은 그 고역이, 이 아름다운, 긴 이야기에 결정 한--그렇게 생각하면, 재차「소설」의 이상함을 생각한다.

 

한쪽에서, 이 작품이 경쾨해서 다채로운 재미있음이 아무리 자연히 샘솟아 왔는가? 정확한 문장으로 하기 위해서, 표현의 기술을 어떤 식으로 단련했는가? 30년을 되돌아봐서 이야기하는 표정은 충실하고 있었다.


어떤 질문에도, 솔직한 대답이 반드시 돌아왔다. 햇볕에 그을려 거친 평상복인데 완전히 풍격을 늘린, 온 세상에 사랑받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거기에 있었다.

 

무라카미씨자신이 영화「노르웨이의 숲」에 기대하도록, 멋진 작품이 되어 온 세상의 사람들에게 소설과 같이 사랑받는 영화가 되면 좋다고…


좀처럼 이러한 롱 인터뷰를 볼 것도 없고, 아직도 1 Q84열도 계속 되는군요.

 

출처 : http://blog.daum.net/mayfung/8553691?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mayfung%2F8553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