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니의 이적소동이 비춰준 시대의 진실.
"재능"이야말로 모든것을 지배한다.
축구계에 격진을 일으키며 곧바로 수속된 루니의 이적소동.
그것은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이자 그렇게 읽고 풀어낸것이 본고의 저자인 사이몬 쿠퍼입니다.
감독의 권위의 실추와 선수의 힘의 증대를 거기서 볼수있습니다.
text by Simon KUPER
저자 프로필
사이몬 쿠퍼
유럽을 대표하는 저술가. 영국경제잡지『파이낸셜 타임스』등에서 집필을 맡고있습니다. 스포츠를 인류학적 견지로 고찰하는 새로운 저널을 개척했고 1994년 축구의 이면을 다룬 획기적인 명저『축구의 적』을 상신. 윌리엄 힐이 주최한「Sportsbook of the Year」을 수상했습니다. 우간다출신의 잉글랜드인이며 네덜란드, 미국, 스웨덴, 자메이카에서 자라 잉글랜드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세계적인 배경의 소유자입니다. 69년생.
주급 18만파운드 등 루니측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형태로 계약연장→잔류를 이끌어낸 퍼거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하지만 이 투쟁에서 최후에 웃었떤것은「선수」였다.
소동 이후 양자의 악수는 마치 집을 나갔던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를 이해한 장면같기도했다.
10월중순에 일어났던 웨인 루니의 이적소동은 Sir 알렉스 퍼거슨을 매우 혼란스럽게했다. 노장은 루니가 영원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플레이할거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그 소동은 뜻밖에도 빠르게 해결되었다. 루니가 사인한 새로운 5년간의 계약서. 그곳에 쓰여있는것은 주급 18만파운드라고하는 금액이었다. 퍼거슨은 선수와 부자같은 관계를 쌓는 타입의 매니저(감독)다. 그는 오랜 커리어속에서 언제나 그 독특한 스타일을 유지해왔다. 소동 이후 루니와의 악수는 마치 집을 나갔던 아들과 아버지가 화해하는 장면같기도했다.
퍼거슨은 말했다.
「루니는 이 클럽이 얼마나 강한지 그것을 이해했을겁니다」
루니는 그후 팀메이트와 퍼거슨에게 사죄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클럽이 얼마나 루니를 필요로하고있는가(혹은 의존하고있는가)를 세간에 보여주는 결과가 되었다. 이 소동은 변해가는 감독과 선수의 파워밸런스를 상징하는것이기도했다. 현재 축구계에서는 선수가 감독보다도 유리한 입장에 서있다. 68세의 퍼거슨은 축구계에 남은 마지막「토탈 매니저」, 즉 선수와 클럽 전체를 컨트롤하는 힘을 가진 존재일것이다. 감독이 갖고있는 권력은 현재 클럽의 경영책임자인 치프 이그젝티브, 유능한 이사, 그리고 스포츠디렉터들의 손에 쥐어져있는것이다.
쇠퇴하는 감독의 권위. 이번 사건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에이전트와 선수다. 변모하는 감독과 선수의 관계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발을 내딛으려하고있는것이다. 축구사 초기에는 감독의 역할이란 그다지 중요한것은 아니었다. 혹은 도구와 같은 존재였다고 말할수있을지도 모른다. 영국인 저술가 바니 로네이는 널리 알려진 저서『The Manager : The Absurd Ascent of the Most Important Man in Football』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20세기초두, 영국에서는 선수를 선택하는것은 감독이 아닌 클럽의 간부였고 연습을 지휘하는것은 트레이너였다」
당시 매니저란 문자 그대로 총무, 혹은 비서같은존재였던것이다. 1940년부터 60낸대에 걸쳐 바르셀로나, 인터밀란, 스페인대표, 프랑스대표, 이탈리아대표등을 이끌었던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명장 에레리오 에레라는 내게 이렇게 말해줬던적이 있다.
「과거에는 팀을 움직이는것은 선수들이었습니다. 당신의 팀에 디 스테파뇨와 마쫄라, 혹은 시보리가 있다고 해보죠. 꾸짖지못하는 감독인 당신의 일은,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바꿨습니다. 그때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해죠. 내가 감독이다. 즉 보스는 나다, 라고. 그 이후 선수들도 큰돈을 모을수있게되었던것입니다」. 에레라의 그렇게 말하며 기쁜듯이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비볐다.
주급 18만파운드 등 루니측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형태로 계약연장→잔류를 이끌어낸 퍼거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하지만 이 투쟁에서 마지막에 웃었던것은「선수」였다.
양피코트를 화려하게 입고 손가락 사이에는 고가의 궐련이.
머지않아 감독들은 권력을 늘려나갔다. 60년대이후 신문과 TV라고하는 미디어가 축구에 공간과 시간을 배분하게되었기때문이라는것, 감독에 대한 주목도 급격히 높아져갔다. 감독은 정기적으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게되었고 그 모습은 팀, 그리고 클럽을 상징하는것이 되었다. 감독은 승리후에는 칭찬받았고 그리고 패전뒤에는 매섭게 비난받았다. 이탈리아에서 에레라는「일 마고(마술사)」라고 불리게되었고, 내가 매년 그와 만났을때 지역신문의 풍자화에는 베네치아의 궁전에서 마술을 부리는 그의 모습이 그려져있었다.
감독의 권위의 상승은 독일에서는 소극적이었다. 독일에는 테크니컬 디렉터가 선수의 매매를 담당하고있었기때문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현장에 개입하는 회장이 모든것을 전담했다. 하지만 그런 유럽 각국과는 선을 긋고 영국에서는 감독의 존재는 커질뿐이었다. 루니는 감독의 권위의 추락을 보여줬지만 얼마전 말콤 앨리슨의 서거(10월 10일)도 변화해가는 시대를 상징하는듯했다.
「빅 말」이라는 별명의 앨리슨은 맨체스터 시티와 크리스탈 팰리스를 이끌었던 70년대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이었다. 앨리슨은 축구감독임과 동시에 여성에게 둘러싸인 인기의 쇼맨이기도했다. 양피코트를 화려하게 입고 펠트 모자를 우아하게 눌러쓴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고가의 궐련이 있었다. 때로는 알몸도 보였다. 76년 어느날, 그는 포르노스타 피오나 리치몬드를 스리스탈 팰리스의 샤워룸에 초대해서 카메라맨이 셔텨를 누르는가운데 스스로 욕조속에 몸을 담근적도 있었다.
앨리슨은 술을 마시면서 저널리스트들의 취재에 응했다. 그는「내가 축구를 달로 데려갈거야」「유럽의 겁쟁이들을 놀라게할거야」등의 명언을 세간에 만들어냈습니다. 피치위에서는 심판에게 소리를 질렀고 스타디움의 터널에서 피치에 입장할때는 선수의 선두에 서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관객에게 그의 모습을 보였다. 당시 앨리슨은 선수보다도 유명한 존재였다. 그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쾌락주의적스타로서의 감독이었다.
앨리슨이 오랫동안 지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시대, 선수에게 주어진 권력이란 사소한것이었다. 클럽은 선수의 이적을 저지할 충분한 힘을 갖고있었다. 감독과 대립한 불행한 선수는 몇개월동안, 혹은 몇년동안 스탠드에서 경기를 관전하는적도 있었다. 7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유럽에서는 선수의 연봉이 18만파운드를 넘는일은 없었다. 당시 선수란 지금과는 비교할수없을정도로 작은 존재였다.
지금부터 30년전의일,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 트레보어 프랜시스는 어떤 상을 받았다. 수상식에서는 소속된 노팅엄 포레스트의 감독 브라이언 클로에게서 상을 받는식으로 정해져있었다. 그리고 스테이지에 올라온 프랜시스에게 클로는 이렇게 소리질렀다라는것.「젊은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교사로서의 감독이, 학생으로서의 선수를 교육했던 시대. 당시 선수는 감독을「보스」라고 불렀고 감독은 선수들「아들」이라고 불렀다.
축구선수의 자서전을 보면, 그들의「친구」로서 반드시 대리인이 등장한다.
그런 선수와 감독의 관계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것은 95년 보스만판결이후였다. EU의 재판소가 내린 판결로 인해 계약이 만료된 선수는 어디든 좋아하는 클럽으로 이적할수있게되었고, EU패스포트를 소지하고있으면 영내의 어떤 나라이던 자유롭게 이적할수있게되었다. 이 보스만판결 이후 감독과 선수의 파워밸런스는 선수측으로 기울어갔다. 선수는 귀중한「재능」으로 취급받게되었고 성공하는 클럽이란 좋은 선수를 보유한 클럽이 되었다. 이제는 좋은 감독을 보유한 클럽이 성공하는것은 사라졌다. 나와의 공저「『재팬』은 왜 패배한것인가」 속에서 런던의 커스 비지니스스쿨의 교수 스테판 시만스키는 어떤 조사를 실시했다. 그는 그 조사에서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에서는 보유한 선수의 연봉의 총액이 팀의 성적에 직결된다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대 축구에서는 선수에게 많은 급료를 지불하고있는 클럽이 성공을 거두고있다라는것이다.
총무, 혹은 비서같은 존재에 불과했던 감독을「보스」로 만든것이 명장 에레라였다.
선수가 승리를 불러왔다. 95년 이후 그런 선수들은 큰 돈을 손에넣게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부회장이자 경제전략부문을 담당하고있는 하비에르 파우스는 지난달 방에 가득 몰려든 경제학자의 앞에서 이렇게 불평했다.「우리는 새로운 도전앞에 서게되었다. 수입이 늘어나면 늘어나는만큼 대리인과 선수에게서의 압박은 심해진다. 그것을 좀더 이쪽으로 건네라, 라고」. 지금 클럽은 선수의 아쉬움을 만족시킬 물주전자같은 존재가 되고있다. 그것은 최근 2~30년동안 다른 산업에서 일어났던 같은 사태를 생각나게한다. 헐리우드, 월스트리트, 런던 시티. 최상급에 있는 사람들이 막대한 수입을 손에 넣는다. 축구클럽의 총책임자도 그렇다. 그들의 급료는 최근 수십년간 멈추지않고 계속 상승하고있다. 돈은 권위가 있는 방향으로 흐르고, 거기서 아래로 떨어져가는것이다.
「빅 말」의 시대, 축구선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감독이었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선수의 커리어의 열쇠를 쥐는 중요인물은 대리인이다. 지금 축구선수의 자서전을 보면, 그들의「친구」로서 반드시 대리인이 등장한다. 포스 스트레트포드는 누구나 원하는 루니의 대리인의 자리를 쟁취했고 그의 커리어를 프로듀스해왔다. 그는 루니의 부인 콜린의 TV관계업무, 즉 교양없는 명사로서의 노출에 관해서도 전담하는등 확실히 루니가의 문지기라고 말할수있는 존재다.「폴은 모든면을 보살펴주고있고 100퍼센트 그를 신뢰하고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다.」
루니는 자서전에 그렇게 기록했다.
서거한 앨리슨에게 묵념을 올리는 웨스트햄과 뉴캐슬의 선수들.「빅 말」의 죽음은 변해가는 시대를 상징하는듯하다
루니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0월의 전쟁은 아이의 친권을 다투는 싸움같기도했었다. 스트레트포드가 루니의 이적에 대한 소문을 흘렸던것은 보다 좋은 금액조건을 끌어내기위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퍼거슨과 선수의 사이에 약해져가는 관계를 세간에 알리게되었다. 감독은 대리인에 대해 탐욕으로 다른생물을 식량으로하는「상어」라고 부르며 그들은 선수의 일같은건 일절 생각하지않는다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해서 엄연한 사실이 달라지지는않는다. 감독의 손에서 선수는 떠났고 대리인과의 권력투쟁에 패했다라는것이 사실이다. 퍼거슨에게 있어서는 뼈아픈 현실일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로네이의 말을 빌리자면 계속해서「토탈 매니저」였었기때문이다.
퍼거슨은 지금까지도 선수를 자신의 아들처럼 대했다. 2008년 여름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기를 원했을때 퍼거슨은 호나우두를「the boy」라며 마치 아들인것처럼 불렀다.「만약 그가 당신의 아들이었다면 어떻게하는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말해줄수있었을겁니다. 솔직히 제게는 호나우두가 최악의 선택을 내리려한다고는 생각하지않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입니다.」
퍼거슨은 계약을 갱신하지않을거라고 표명했던 루니에 대해 마치 감사하는것을 잊은 아이를 훈계하는것처럼 이렇게 말했다.「그가 이 클럽에 왔던 순간부터 우리는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가 문제가 생기면 전력으로 도왔고, 금전적인면 등 개인적인 조언을 했던적도 있었습니다. 사생활을 포함해 몇번이나 도와줬습니다」. 과거에 퍼거슨은 부자관계를 거부한 선수를 선선히 내보내왔다. 데이빗 베컴, 루드 반 니스텔로이, 로이 킨,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루니와는 그렇게할수없었다. 퍼거슨은 루니를 필요로했고 그것을 위해 모반 이후에도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악수를 교환했다.
루니의 대리인으로서 이번 이적소동을 말없이 연출한 스트레트포드. 지금 선수는 감독이 아닌 그들의 손에 있다.
아스날에서 큰 권한을 가진 벵거도 퍼거슨같은 토탈 매니저지만 선수와의 관계의 변화를 분별하고있다.
선수 및 클럽관계자에게 인사를 하는 리버풀의 헨리 오너. 이 미국인의 참가 또한 시대를 반영하는 시사적인 사건일것이다.
퍼거슨 은퇴 이후는 그 권한은 나눠질것이고 적어도 3명의 대역이.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도 얼마 남지않은 토탈 매니저중 한명이다. 2009년에 단장으로 취임한 이반 가지디스는 그때 벵거의 면접을 받았다. 단장의 면접이라니 다른 비지니스에서는 생각할수없지만 축구클럽에서는 그것이 실시되고있다. 한편으로 벵거는, 선수와 감독의 파워밸런스가 전자에게 기울어있는것을 퍼거슨보다도 이해하고있다. 이 프랑스인은 선수와 대화를 나눌때 그들을 한명의 어른으로 취급한다. 레알 마드리드의 조세 무리뉴는 선수를 친구처럼 대한다. 하지만 퍼거슨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는 계속해서「토탈 매니저」일수밖에없기때문이다.
마지막 토탈 매니저, 퍼거슨이 은퇴한 뒤에는 어덯게될것인가(어떤 의미로는 그는 불사신처럼 보이지만). 그가 소화해내고있는 일은 몇명에게 나뉘어질것이다. 적어도 3명이 필요하다. 데이빗 길은 단장으로서 한층더 권력을 강화시킬것이고, 첼시의 프랑크 아르네센처럼 크게 현장을 총괄하는 풋볼 디렉터라고하는 직책이 설치될것이다. 그리고 올드 트래포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에는 1군팀을 지휘하는「코치」가 등장한다.
많은 빅클럽에서 전문화가 진행되고있다. 분야별 전문코치, 피지컬트레이너, 컴퓨터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퍼포먼스 디렉터. 클럽의 구조는「토탈 매니저」에 의한 독자정권에서 다수의 지혜가 결집되는 형태로 변화해갈것이다. MLB의 보스톤 레드삭스를 소유하고있는 존 헨리가 리버풀을 매입한 건은 큰 의미를 갖고있다. 미국의 야구팀에서는 감독이란 대부분 있는듯없는듯한 다수속의 한명에 불과하다. 헨리가 이끌 리버풀, 그리고 축구계 전체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있는것은 아닐까.
어떤 클럽의 경영자든 이제는 루니 한명에게 안된다. 선수는 감독에게 반항할 필요조차없다. 그것을 하는것은 대리인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재능이야말로 모든것을 지배하는것이다.
출처 : 월드사커 다이제스트 2010년 11월 18호
출처 : http://serieamania.com/xe/calcioboard/350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