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질주하는` 日 기업 비결은?
경제불황의 짙은 그늘은 이웃나라 일본에도 드리워져있다. 허나 그 와중에도 볕이 드는 곳은 있다. 불경기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어도 '팔리는 물건'은 팔리기 마련. 한국에도 진출한 '유니클로'와 'ABC마트' 등 일본 소매업체들이 연달아 '깜짝 실적'을 발표하며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소비자의 지갑을 열었을까.
◆매출액·순이익 '깜짝 실적' 행진
'유니클로'의 모회사 패스트리테일링의 2009년 매출액(8월 결산)은 전년 대비 13% 오른 6600억 엔(약 8조7천억 원), 영업이익은 950억엔(약 1조2천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 유명 브랜드 '폴로 랄프로렌'의 2008년 매출액인 5336억 엔을 뛰어넘는 것. 2001년 거두었던 최고이익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 회사 야나이 타다시 회장(사장 겸직, 60)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올해 '일본 최고 부자'에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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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리테일링의 매출액과 점포수 성장 추이, 출처 : 일본 패스트리테일링社>
'깜짝 실적'을 발표한 것은 '유니클로' 뿐만이 아니다. 가구회사 '니토리'와 한국에도 진출한 신발 유통업체 'ABC마트'는 2009년 2월 분기 최고이익을 갱신했다. 니토리는 28%포인트 오른 339억 엔, ABC마트는 196억 엔의 순이익을 올렸다.
◆"잠재수요 찾아내서 팔리는 상품 만든다"
이처럼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하는 업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이들 업체는 소비자의 성향과 시장의 흐름을 먼저 파악하고 이를 품질과 가격에 반영시키는 등 한발 앞서 나아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분기마다 새로운 상품 내놓는다"=야나이 회장은 9일 기자회견에서 "소비자의 잠재수요를 발견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지금의 소비자는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가격책정이 아니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8일 사내 인터뷰에서 야나이 회장은 "매 분기마다 히트 상품을 내놓는데 성공한 것이 성장의 원인이다"고 말했다. 그는 "세부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실에서는 매일 상황이 급변한다"며 "공격적인 행동으로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나이 회장은 "유니클로의 모든 직원들은 절박할 정도로 '어떻게 하면 상품을 팔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고민한다"며 "'회사의 혁신'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물류비 낮추고 공격적 가격인하"='니토리'는 공급망 관리에 성공한 업체다. 대형 물류센터에 맡겼던 재고관리를 중국으로 이전해 경비를 줄였다. 이 회사는 세계 270개 회사로부터 제품을 공급받는 직수입 체제를 구축해 10년 간 438%의 매출성장을 이뤘다. 니토리는 2008년 초 1300여개 상품의 가격을 약 20% 낮춘 데 이어 가격 인하 상품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 회사는 '엔강세' 영향까지 받아 내수를 늘렸다.
"빠른 상품 회전과 철저한 재고관리"='ABC마트'는 신발을 주력으로 가방이나 의류같은 스포츠용품을 시장흐름에 맞춰 신속하게 판매한다. 경쟁업체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다. 1990년 도쿄에 첫 매장을 개점한 이 회사는 상품의 개발과 수입을 병행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판매 동향의 빠른 파악과 POS(판매시점정보관리, Point of Sales) 활용을 극대화한 철저한 재고관리가 강점이라는 평이다. 최근 강화한 등산화 부분이 좋은 반응을 얻어 매출에 기여했다.
일본 언론은 이들 '생활 방위' 기업의 성장세를 "소비자의 절약 지향을 먼저 파악하고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선 저가 상품의 선제투입이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일 지면을 통해 "소비자의 선별의 눈이 까다로워지고 있어 기업전략의 성패여부가 추궁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높은 성장을 보이는 소매업체들이 저렴한 가격 외에도 "디자인과 능숙한 연출 기교로 특정 소비자층을 공략했다"고 평가했다.
◆늦추지 않는 고삐
패스트리테일링은 최근 저가 브랜드 '지유'를 통해 '990엔(약 1만3천 원) 청바지'를 발표했다. '유니클로' 청바지와 비교해도 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야나이 회장은 "'지유'의 상품 중 80% 이상을 '유니클로'의 반값 이하로 책정했다"며 "2013년까지 점포수를 4배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패스트리테일링은 3월 미국 브랜드 '띠어리(Theory)'를 인수하고 보유 브랜드 매장을 늘리는 등 '몸집 불리기'를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해외 온라인판매, 외국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판매망 확대 등 공격적인 사업확장을 계속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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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기관에서도 일본의 성공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패스트리테일링을 "브랜드 관리를 통해 불황을 이겨낸 기업"으로 꼽았다. 대한상의는 "불황을 극복한 소매업체들의 공통점은 제도, 관습, 상식 등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비즈니스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라며 "차별화된 핵심 역량만이 불황에 살아남는 성공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LG경제연구원은 "트레이딩 다운(Trading Down, 하향구매)시장이 형성된 것"이라며 "최근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보물'을 찾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유니클로>=1984년 6월 1호점을 열었다. 생산, 유통, 판매를 직접 담당하는 SPA(제조소매업, 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의류 브랜드다. 1998년 플리스(Fleece) 열풍을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 유니클로 붐을 일으키며 성장했다. 일본 내에만 760여 개 매장을 운영한다.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추고 폭넓은 고객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질 샌더 등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유사한 브랜드로는 스페인의 '자라' 스웨덴의 'H&M' 등이 있다.
'유니클로'의 특징은 세계 각지에 부서를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품개발 부서는 도쿄와 미국에 두고 국제적인 유행을 분석한다. 상품은 중국에서 90% 이상 생산되며 그 외 인건비가 낮은 아시아 국가에도 공장을 두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을 전세계 매장을 통해 판매한다.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 7개국에 진출해 있다.
입력: 2009-04-15 16:01 / 수정: 2009-04-1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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