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하의 글로벌경제 읽기-6] '더블딥'논쟁에 괴로운 취업 재수생들
기사입력 2009-10-19 10:05 최종수정 2009-10-19 15:45
4년차 취업재수생인 이한설씨(27.여)는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최근 뜨거워진 ‘더블딥’(double dip) 논쟁 때문이다.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데 기업들이 앞으로 채용문을 더 좁히는 것 아닌가 싶어 조바심이 난다. “경기가 침체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모 고위 공직자가 너무나 얄밉다.
더블딥이란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되다가 다시 침체되는 경제현상을 일컫는다. 세계 경제의 더블딥 우려는 올초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각종 지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하는가 했는데 최근 다시 부상했다. 막대한 재정을 퍼붓고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 미국의 경기 때문이다.
더블딥을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 2001년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2008년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 국제결제은행(BIS)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윌리엄 화이트 등이 더블딥을 주장하는 쪽이다. 대표적 닥터 둠(Dr. Doom, 경제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확장적 재정정책의 한계와 미진한 소비회복 등을 근거로 더블딥에 빠져 들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세계위기는 자산가격 붕괴에 따른 수요부족에서 비롯됐다. 전세계의 생산-공급량을 소화해 줄만한 소비시장이 사라져 버렸다. 그 역할을 해 왔던 미국의 소비패턴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오히려 저축을 늘리고 있다. 되돌아갈 가능성도 당분간 없어 보인다.
중국의 소비시장에 기댈 수도 없다. 중국은 민간소비가 총 GDP의 35% 수준에 지나지 않는 구조다. 각국 정부도 최근 쏟아 부은 재정지출이 벅차다. 지속적인 확대재정 정책이 부담스럽다. 정부가 재정을 쏟아 붓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민간의 소비와 투자 역시 살아나기 어렵다. 더블딥 현실화 주장이 힘을 받는 이유들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더블딥이란 게 ‘별 게 아니다’. 경기의 회복속도가 늦어질 것이란 말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세계경제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대미문의 충격을 받았다. 전세계에 걸친 동시다발적 위기였고 충격의 폭과 깊이가 과거와 달랐다. 회복이 더딘 것은 당연하다. 체력이 약해진 경제가 급반등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결국 바닥이 두터운 U자형 회복이나, 경기둔화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L자형 회복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더블딥은 이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당초 위기가 확산됐을 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V자형 회복은 어렵다고 내다본 것 아닌가? 다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경제만 V자형의 회복을 기대했던 것뿐이다. 사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이 국제기구였다. IMF는 지난 8월 연례협의보고서에서 내년 한국경제는 2.5%, 내후년에는 5.2%의 고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우리가 V자 회복을 달성하리라는 것은 그냥 믿음으로 자리잡혔다.
사실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 쪽은 더블딥 확률을 낮게 보고 있다. 제임스 애덤스 세계은행 부총재는 최근 “세계 경제가 바닥을 쳤으며, 더블딥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도 우리나라의 더블딥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당분간 개선될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부정적인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 게다가 더블딥이 현실화하면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그 타격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을 잠깐 거두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어 내려는 국제적 정책 공조에 기대를 걸어 보자. 시간이 걸리긴 할 것이다. 동이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 아닌가.
◆ 박용하는?
현재 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연구소 내 국제경제팀장을 거쳐 구미(歐美) 경제파트를 이끌고 있다. 한 때 국내 일간지에서 경제부·국제부 기자로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에선 국제금융부, 국제업무부, 외화자금부, 자금거래실, 런던지점 등에서 근무하며 국제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와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KAIST 금융공학과정을 거쳤다.
[박용하 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4년차 취업재수생인 이한설씨(27.여)는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최근 뜨거워진 ‘더블딥’(double dip) 논쟁 때문이다.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데 기업들이 앞으로 채용문을 더 좁히는 것 아닌가 싶어 조바심이 난다. “경기가 침체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모 고위 공직자가 너무나 얄밉다.
더블딥이란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되다가 다시 침체되는 경제현상을 일컫는다. 세계 경제의 더블딥 우려는 올초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각종 지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하는가 했는데 최근 다시 부상했다. 막대한 재정을 퍼붓고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 미국의 경기 때문이다.
더블딥을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 2001년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2008년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 국제결제은행(BIS)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윌리엄 화이트 등이 더블딥을 주장하는 쪽이다. 대표적 닥터 둠(Dr. Doom, 경제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확장적 재정정책의 한계와 미진한 소비회복 등을 근거로 더블딥에 빠져 들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세계위기는 자산가격 붕괴에 따른 수요부족에서 비롯됐다. 전세계의 생산-공급량을 소화해 줄만한 소비시장이 사라져 버렸다. 그 역할을 해 왔던 미국의 소비패턴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오히려 저축을 늘리고 있다. 되돌아갈 가능성도 당분간 없어 보인다.
중국의 소비시장에 기댈 수도 없다. 중국은 민간소비가 총 GDP의 35% 수준에 지나지 않는 구조다. 각국 정부도 최근 쏟아 부은 재정지출이 벅차다. 지속적인 확대재정 정책이 부담스럽다. 정부가 재정을 쏟아 붓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민간의 소비와 투자 역시 살아나기 어렵다. 더블딥 현실화 주장이 힘을 받는 이유들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더블딥이란 게 ‘별 게 아니다’. 경기의 회복속도가 늦어질 것이란 말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세계경제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대미문의 충격을 받았다. 전세계에 걸친 동시다발적 위기였고 충격의 폭과 깊이가 과거와 달랐다. 회복이 더딘 것은 당연하다. 체력이 약해진 경제가 급반등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결국 바닥이 두터운 U자형 회복이나, 경기둔화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L자형 회복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더블딥은 이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당초 위기가 확산됐을 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V자형 회복은 어렵다고 내다본 것 아닌가? 다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경제만 V자형의 회복을 기대했던 것뿐이다. 사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이 국제기구였다. IMF는 지난 8월 연례협의보고서에서 내년 한국경제는 2.5%, 내후년에는 5.2%의 고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우리가 V자 회복을 달성하리라는 것은 그냥 믿음으로 자리잡혔다.
사실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 쪽은 더블딥 확률을 낮게 보고 있다. 제임스 애덤스 세계은행 부총재는 최근 “세계 경제가 바닥을 쳤으며, 더블딥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도 우리나라의 더블딥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당분간 개선될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부정적인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 게다가 더블딥이 현실화하면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그 타격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을 잠깐 거두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어 내려는 국제적 정책 공조에 기대를 걸어 보자. 시간이 걸리긴 할 것이다. 동이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 아닌가.
◆ 박용하는?
현재 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연구소 내 국제경제팀장을 거쳐 구미(歐美) 경제파트를 이끌고 있다. 한 때 국내 일간지에서 경제부·국제부 기자로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에선 국제금융부, 국제업무부, 외화자금부, 자금거래실, 런던지점 등에서 근무하며 국제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와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KAIST 금융공학과정을 거쳤다.
[박용하 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